69화 : 석축쌓는 굴삭기
<아무튼, 농막>
69화 : 석축쌓는 굴삭기
전원주택도 아닌 밭 테두리에 석축을 쌓는 것은 좀 과하죠. 하지만 저와 취향이 비슷한 이웃 둘 다, 농막 설치 때문에 절토한 사면을 그냥 복구하기보다는 좀 더 예쁘게 석축을 쌓아보자는데 의기투합했습니다.
비용이 좀 들긴 하지만 어차피 높이가 1.5미터 이하라서 2~3단으로 쌓는 거라 돌이 적게 들어가고 보기에 훨씬 좋으니까요. 그리고 제 입장에서는 밭 경사가 완만했던 원래 상태로 복구하면 진입로 폭이 지금보다 50cm 정도 좁아져서 차를 후진하기 까다로운데, 석축으로 쌓으면 차지하는 공간폭이 줄어들어서 진입로를 좀 더 넓게 쓸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제 땅을 지나가는 석축 면적은 절반에 못미치지만, 어차피 제가 부탁해서 절토했던 사면을 복구하는 작업에 굴삭기 반나절 작업비용을 써야 하는 점을 감안해서 반반씩 부담하기로 했습니다.
이웃께서 업체를 수소문하셔서 이 근방에서 괜찮다고 하는 '공주석재'를 통해 전원주택용으로 많이 쓴다는 '온양석'을 추천받았는데, 발파석보다야 비싸지만 가장 저렴한 축이면서 모양도 괜찮아서 그걸로 받기로 했습니다.
공주석재를 통해 석축 잘 쌓으시는 굴삭기 사장님을 소개받았는데, 알아보니 석축 쌓는 게 디자인 감각과 기술, 경험이 모두 요구되는 섬세한 작업이라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원래는 절토하면서 나왔던 석재를 부분적으로 활용하면 25톤 덤프트럭 한 차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굴삭기 사장님께서 현장을 확인하시고 땅속에 묻혀있던 돌은 붉은색 계통이라 안어울려서 쓸 수가 없어서 두 차가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곳 현장이 작업반경이 좁고, 바로 위에 전선이 양 갈래로 지나가서 작업 속도를 내기 어려워서 하루치 작업으로 어렵다시면서 아침 7시에 시작해서 저녁 7시 정도에 다 끝날 때까지 작업비용으로 100만 원을 요구하셨고요.
온양석 25.5톤 덤프트럭 한 대 가격이 운송비 포함 70만 원이니 절반만 부담한다고 해도 적지 않은 비용이죠. 그래도 꼭 하고 싶어서 주식까지 팔아서 제 부담비용을 송금했습니다.
원래 석축쌓기는 일요일 아침 7시에 시작하는 걸로 예약이 되어 있었는데, 온양석 구매와 석축쌓는 기사님을 섭외를 해주신 농막 이웃께서 본인도 방금 통보받았다며 토요일인 오늘 아침에 지금 작업 시작했다고 연락 주셨네요.
오늘 오후부터 계속 비가 와서 하루 앞당겼다는데 공주석재 사장님께서 제대로 전달을 안해주셨다고 합니다. 아침을 간단히 챙겨먹고 아내와 같이 집을 나섰습니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구름이 잔뜩 끼고 바람이 솔솔 불어서 야외작업하기엔 최고의 날씨네요. 오후 2시쯤 부터 비가 온다는 좀 걸렸지만요.
오늘 작업을 맡아주신 굴삭기 사장님은 일 시작하신지 20년이 넘으셨다는데 스타일 좋고 미남에 친절한 인상의 제 또래 정도의 분이시네요. 석축쌓기가 공간디자인에 대한 감각이 필요한 섬세한 작업이다보니 신뢰가 가더라구요.
7톤 트럭보다 훨씬 길다란 트럭이 한 차 넘게 실어왔는데, 돌을 붓는게 아니라 굴삭기가 하나씩 집어서 내렸네요.
작업은 제 땅 안쪽의 전신주 옆부터 시작했습니다. 집게발을 든 06W 백호우 굴삭기가 적당한 돌을 골라서 하나씩 위치를 잡고 꽂은 다음에 쿵쿵 두드려서 제대로 자리잡게 눌러주는 식이네요. 중간에 적당히 흙도 채우고요.
작업 중간에 덤프트럭이 한 차 더 와서 온양석을 부어놓고 가는데, 돌덩어리들이 한꺼번에 떨어지니 지진이 난것처럼 진동이 느껴졌습니다.
온양석 두 차를 잘 받았다는 납품증. 25톤 덤프트럭 기사님은 좁은 길인데도 후진해서 잘 나가시네요.
가장 중요한 모서리 부분을 신중하게 쌓아주시는 기사님. 아파트단지 등에 쌓은 석축을 흔하게 봤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신중하게 쌓는 모습을 보는 느낌은 또 다르네요. 작업반경과 전선줄때문에 석축을 정면에서 못보고 옆으로 봐야해서 실력 발휘가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전선을 건드릴까봐 굴삭기 팔이 시원스럽게 못움직이네요.
오후 2시가 좀 지나서 일기예보대로 비가 오기 시작합니다. 점심도 짜장면으로 급하게 드시고서 휴식 없이 오후 작업을 바로 시작하셨는데도 말이죠.
제 밭쪽은 3단으로 시작했고, 이웃밭쪽은 2단으로 완만하게 낮아져가는 모양인데 석축이 높지 않아서 예전에 흙으로 쌓여있을 때보다 개방감이 훨씬 좋네요.
오후 5시쯤부터 작업 후 바닥에 떨어진 흙을 모아서 윗 밭에 올리고, 마무리 작업으로 제 밭 안쪽에 농막 설치를 위해 절토한 부분을 복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크레인 자리를 위해 절토하다가 나온 돌들을 먼저 채우고, 그 위에 예전에 절토해서 쌓아둔 흙을 깎인 사면에 덮어갑니다. 그 와중에 호박 한 그루 생매장 ㅠ.ㅠ
작업 중에 서비스로 농막 현관문쪽에 산처럼 쌓여있는 잡석 무더기를 드나들기 좋게 큰 버킷으로 단단히 다져주시네요.
저는 혹시나 농막 건드리시는거 아닌지 조마조마했습니다.
부동수전 주변도 위치가 좀 낮아서 비가 오면 물에 잡기는데 잡석을 둘러주셨고요. 제가 따로 부탁드린 작업도 아닌데 아침 7시부터 계속 일하시면서 피곤하신 와중에 이렇게 챙겨주시는 섬세함에 감탄했습니다.
안쪽에 물이 잘 고이는 낮은 부분에도 흙을 좀 다져주셨고요. 제 밭 입구쪽도 턱이 없이 경사가 완만하게 잘 만들어졌네요.
중간에 빗발이 거의 폭우 수준으로 굵어질 때는 이러다가 작업 못하신다고 하시는거 아닌지 조마조마 했습니다. 그렇게 작업은 저녁 7시가 거의 다 되서 마무리 되었고요.
고생하신 기사님께 드릴 게 없어서 캔맥주와 베질루르 홍차 티백을 좀 챙겨드렸더니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웃음을 보여주시네요.
일반 차와는 달리 360도 자유롭게 회전하고, 팔을 통해 온갖 작업을 다하고, 가끔은 팔을 디딤발로 쓰고 앞 바퀴 두 개를 번쩍 들고 자리를 옮기는 굴삭기의 작업 모습은 계속 구경해도 질리지가 않더라구요. 거인의 발레를 보는 느낌? 여러분들께도 추천드립니다.
이렇게 또 하나의 할 일을 잘 마무리 했네요. 오늘부터 계속 비가 내리고, 바로 장마전선이 올라올 예정인데, 절토된 사면을 이렇게 석축으로 복구해드리니 걱정거리가 없어져서 기분이 참 좋습니다.
이제 남은 건 배수로 공사!
(70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