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일본소설

[요네자와 호노부/김선영 역] 왕과 서커스(2015)

태즈매니언 2025. 6. 8. 23:22

 

또 요네자와 호노부입니다. 2001년에 네팔 왕실에서 벌어졌던 미스테리한 사건을 소재로 빌려오긴 했지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기자가 기사를 쓰고 이를 보도하는 이유와 '쓰는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직업 윤리였다고 생각되네요.

<소년 탐정 김전일>처럼 외딴 롯지의 투숙객들 모두를 용의자 선상에 올리게 했다가, 마지막에는 가장 용의자와 거리가 멀어보이는 사람이 범인이었다는 걸 밝히는 흐름인데, 독자에게 친절하게 설명하기 위해 그들이 상황에 맞지 않게 자신의 행동들을 찬찬히 설명하는 부분 같은 작위적인 서술이 나오다보니 몰입이 되지 않네요. 막판에 범인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서사가 나오긴 했지만, 그다지 자연스럽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무언가를 보도하지 않고 멈추는 기준이 기자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에는 공감합니다. 사람들을 그 사람이 원했든 원치 않았든 서커스 무대로 올려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기자니까요.

페이스북같은 실명 기반 SNS에서는, 실수를 한 사람을 보면 누구나 캡춰+전파를 통해 나락행 열차에 태워버릴 수 있으니, 꼭 기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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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쪽

누군가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건져내고 정리해서 전달하는 게 기자의 역할이다. 그리고 기자도 여러 종류가 있다.

448쪽

기사 작성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 취재, 설계, 집필. 취재할 때는 언젠가 그것을 기사로 쓰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의식하면 상정한 결론에 맞는 사실만 취재하기 십상이다. 무조건 폭넓게 듣고, 폭넓게 읽고, 폭넓게 찍는다.

529쪽

만약 내게 기자로서 자부할 경험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을 보도한 일이 아니라 이 사진을 보도하지 않았던 일이다. 그 기억을 떠올림으로써 아슬아슬하게나마 누군가의 비극을 서커스로 삼는 실수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