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생물학

[가와카미 가즈토/김소연 역] 치킨에는 진화의 역사가 있다(2019)

태즈매니언 2025. 6. 15. 20:43

 

전부터 이런 책이 있었으면 싶었는데 일본의 조류학자가 제가 원하는 책을 써줬군요. 제목에는 생략된 단어가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치킨에는 (조류) 진화의 역사가 있다>라고 해야겠지요.

이 책의 훌륭한 점은 하늘을 날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조류계의 이단아이지만, 가금류로 같은 앞다리해방연맹원인 인간과의 공존을 선택하면서 가장 성공적으로 번성한 조류가 되었고, 아무래도 통으로 요리해서 먹을 기회가 많아서 사람들이 몸의 구조를 가장 잘 아는 조류인 닭을 선택해서 닭의 부위 하나하나가 비행과 조류의 생태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닭의 각 부위를 정말 세분화해서 도계하고 갖은 요리를 만드는 건 일본이 더 잘하지만, 한국은 마리 단위로 조리하고 파는 통닭의 소비대국이라 이 책의 설명을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저는 닭을 키우면서 수탉을 여러 번 도계하며 내장의 구조와 기관들까지 해부를 해본 경험이 있다보니 아무래도 더 몰입감있게 읽었습니다.

수각류 공룡에서 하늘을 날기 위해 진화한 조류는 최대한 신체를 경량화하고 하늘을 나는데 제약을 주는 요인들을 바꿔야했다는 사실을, 저자의 유머섞인 설명들을 보며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조류의 가슴근육은 날개짓을 하기 위해 체중 대비 거대하고, 이러한 가슴살을 지탱하기 위해 가슴뼈도 흉갑같은 구조이며, (하늘을 날지 않는 닭같은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 많은 산소를 저장하는 적색근이라고 합니다.

긴 날개깃의 뿌리는 뼈와 직접 붙어 있어서 풍압을 잘 견디게 되어 있고, 그래서 첫 줄의 날개깃을 절단하면 제대로 날 수 없다네요.

모든 조류가 난생인 이유, 비행을 위해 중량의 집중화, 관절숫자를 줄여서 얻는 가동성 감소의 불이익의 감소를 불구하고 무게를 줄인 다리, 주요 골격의 안쪽을 비워서 그 안의 공기주머니가 라디에이터겸 예비 산소탱크의 역할을, 푸와그라처럼 지방이 잘 붙는 간이 보조연료탱크 역할을 한다는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조류는 비행으로 많은 산소를 소비하기 때문에 대량의 혈액을 고속으로 순환시켜야 해서 체중 대비 심장의 크기가 크고, 앞다리가 날개가 되면서 입에서 치아를 버리고 유연한 목관절과 부리가 사람의 손가락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는 점도 처음 배웠고요.

닭을 도계할 때면 꽁지 부분의 지방덩어리인 꼬리샘을 잘라서 버리는데, 이 부위에서 분비되는 유분이 새들의 깃털치장을 통해 빗물을 튕겨내는 발수기능을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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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쪽

포란을 하는 새는 번식기가 되면 가슴에 난 깃털이 빠져 맨살이 드러나면서 이곳에 혈관이 발달한다. 이 맨살 구역을 포란반이라 부르는데, 피부에 직접 알을 접촉시킴으로써 효율적으로 체온을 전달해 알을 따뜻하게 품을 수 있다. 무엇보다 깃털은 뛰어난 단열재여서 깃털이 있으면 알이 따뜻해지기 어렵다.

227쪽

눈이 양옆으로 달려 있으면 전진할 때 시야 안에서 세상이 계속 움직인다. 계속 그런 상태라면 걷기만 해도 멀미가 날 것이다. 이미지가 흔들려 대상물으 명료하게 파악할 수 없다. 새 입장에서는 시야에 먹잇감이 들어오게 하는 것이 최대 관심사다. 그런데 보행 중에 먹이를 포착할 수 없다면 효율이 떨어진다. 목을 흔드는 것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획기적인 보행법이다.
이동할 때 머리를 한 발자국만큼 앞으로 내민다. 거기서 머리의 위치를 공간에 대해 정지시키고, 몸을 전방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다시 재빨리 머리를 한 발 앞으로 내민다. 이렇게 하면 시야에 비치는 풍경이 움직이는 시간은 최소화되어 이미지를 정지시킬 수 있다. 몸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분명 고개를 흔드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기능적 의의를 생각하면 세상에 대해 머리를 정지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43쪽

닭의 원종인 적색야계는 수컷의 볏이 건강상태의 지표가 되며, 장 안에 선충 등 기생충이 많으면 볏이 작아진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볏은 남성호르몬으로 알려진 테스토스테론의 양이 많으면 커진다.

253쪽

난생과 태생의 가장 큰 차이는 새끼를 체내에 유지하는 기간에 있다. 난생인 어미 새는 수정이 끝난 알을 재빨리 몸 밖으로 배출한다. 이후 포란을 통해 세포분열이 진행되고 껍질 안에서 개체가 형성되어 간다. 어미 새의 체내에서는 준비된 재료에 껍질을 씌울 뿐이고, 개체의 형성은 체외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새에게 체중 증가는 커다른 부담이다. 안전한 체내에서 태생이나 난태생으로 발생을 진행시키면 새끼의 초기 생존율은 높아지겠지만 비행에 소요되는 비용은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