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사회학

[구현주] 공동체의 감수성(2022)

태즈매니언 2025. 6. 26. 22:18

 

이렇게 훌륭한 책이 2022년에 나와서 아직도 1쇄가 다 소진되지 않았다니 너무 합니다. 제 올해의 논픽션 중 한 자리에 올려봅니다.

최근에 아빠가 되신 박한슬 작가님 덕분에 알게되었는데, 자녀가 살아갈 세상이 어떤 사회가 되면 좋을지, 그런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가야하는지를 생각하며 읽으면 더 와닿을 책입니다.

제목과 표지의 카피로는 어떤 내용을 담은 책인지 와닿지 않는데요. 목차들 자체가 아주 좋은 질문들이라 저자가 한 고민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저자 구현주님은 시민사회 현장 활동가로 십여 년을 보냈고, 사회학 석박사 과정을 수료하여 현장의 경험과 이론의 언어를 함께 빚어내셨네요.

솔직한 토로를 내부자 고발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진심으로 한국사회에서 시민들의 공동체가 형성되길 바라는 사람이라면 관심을 가졌을, 박원순 전 시장 시기로 대표되는 '마을만들기 사업'의 이론적 기초와 전략, 실행과정에서 드러난 현장에서의 모습들을 진지하게 탐구한 결과물입니다.

'마을만들기 운동'은 선의에서 시작했지만, 농한기에 정부가 나눠준 시멘트포대를 나르며 반죽해서 함께 신작로와 공동 빨래터를 만들면서 직접 유형의 결과물을 만들며 자아효능감과 연대의식을 느끼게 해줬던 새마을운동의 열화판이라는 소감입니다. 하필 인구 천만의 도시에서 가장 강조했던 것도 이해할 수가 없고요. '한남사업'이 있었다고 '한녀사업'으로 맞불을 놓아야 했는지.

중앙과 지방정부는 복지의 영역에 집중하고, 인프라인 '공공의 공간'(복합커뮤니티센터, 도서관, 도시공원 등)을 시민들이 차별과 배제없이 누릴 수 있도록 하는데만 힘을 쏟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모인 사람들이 그 안에서 어떤 일들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종교나 사람을 도구로 쓰는 유사상업활동(종교, 다단계 판매 등) 외에는 개입하지 않았으면 하고요.

그리고, 자신의 돈과 시간, 인간적 매력을 쏟아서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 그들의 동료 또는 지원자로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공동체가 많아질수록 '동료 시민로부터 칭송받을 명예로운 공헌'으로 칭송받는 문화도 생길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인정욕구를 채울 수단이 너무 부족한 사회니까요.

저자 구현주님께서 활동가로 오래 일한 경험이 있어서 연구자가 참여관찰한 현장조사를 통해 나온 사회학 연구결과물이 얼마나 매력있는지 간만에 흠뻑 느꼈네요. 이 책을 내실 정도로 깊게 공부하신 분이 왜 박사수료 상태이신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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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쪽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시도 자체가 가능한가'라는 질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음의 두 가지 가능성을 묻는 것이다.
- '오늘날' 마을공동체 만들기는 가능한가.
- 마을공동체 만들기는 '사업으로' 가능한가.

130쪽

행정의 간소화 전략은 현장의 새로운 주민을 등장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기보다는 기존 참여자들이 사업비리를 활성화시키는 데 더 많이 악용되었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마을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이 사회적 자본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마을공동체 사업 결과보고서의 회계 첨부서류를 허위로 만들기 위해 같은 날 사진을 10번 찍어 10회 모인 것처럼 서류를 꾸미는 사례도 인터뷰에서 확인되었다. 이들은 공동체인가? 이 공동체에서 신뢰가 형성될 수 있을까? 내가 어려움을 겪을 때, 위로받을 수 있을까? 그들과 함께하면서 이 마을을 따뜻하고 안락한 곳이라 느낄 수 있을까? 오히려 매일 다니는 스포츠센터 강사와 수강생 사이의 관계가 더 탄탄하지 않을까?

185쪽

마을공동체 사업의 목적은 단순히 주민의 욕구와 필요를 채우는 것이 아니었다. 주민자치를 위한 연습이 되어 결과적으로 주민자치 역량을 향상시킨다는 구상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마을에서 일부 세력이 주도하며 새로운 주민의 성장을 방해함으로써, 형식적 공론장이 만들어졌다. 새롭고 다양한 주민이 자리해야 할 공론장에 껍데기만 남게 되면, 그 자리는 공적인 문제를 "비공공적으로 논의하는 소수의 전문가"와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소비자 대중으로 대체된다.

216-217쪽

신자유주의적 방법이 공동체주의의 방법들로 대체되지 않은 것은 한국사회의 결핍에 기인한다. 우리의 공동체 사상 및 운동은 자유주의의 팽창 속에서 성숙된 결과물이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공동체는 충분히 경험되지도, 논의되지도 못했다. 전체주의의 동원 경험이 공동체운동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학연지연의 연고주의가 공동체주의로 왜곡돼왔다.
이상을 숙고하지 못한 채 진행된 오늘날 마을공동체 사업은, 새마을운동이 받았던 비판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또한 공동체주의라는 가치에 신자유주의적 개발의 방법을 적용하다보니, 가치마저 전복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공동체사업은 '혜택 받는 사업'으로 일축되고, 공모사업을 통한 보조금 배분은 신자유주의의 경쟁논리를 강화할 뿐이다.

243쪽

공동체의 현장도 '공동체를 버려야만 공동체가 된다.' 공동체의 울타리를 걷어내고 '우리'에서 나와야 한다. 공동체 만들기가 공론장으로 전망을 갖기 위해서는 '모두에게 열린 공(open)'을 실현해야 한다. 잘되는 공동체는 문이 늘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