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경] 대한민국 돼지 이야기(2021)
대한민국의 인당 연간 식품 섭취량 중 무게 기준으로 2023년부터 육류(60.6kg)가 쌀(56.4kg)보다 더 많고, 육류 중에서도 돼지고기가 30.1kg으로 더 저렴한 고기인 닭(15.78kg)보다 두 배 정도로 소비되고 있다네요.
그래서 국내에서만 연간 1,100만 마리의 돼지를 사육하고 있고, 수요가 달리는 삼겹살은 20여 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상황이죠. <나는 돼지농장으로 출근한다>의 성우농장이야기도 인상깊었는데, 평균 6개월만에 110~115kg까지 키워 출하한다니 인체에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을 모두 보유하고 있고, 포유류 중 제일이라는 생산성이 엄청난 소중한 가축입니다. 아메리카대륙에 돼지만 있었어도 ㅠ.ㅠ
캐주얼했던 <대한민국 치킨전>애 비해 교과서 같은 느낌이었지만, 제가 먹어온 한돈('한돈'이란 명칭을 2008년부터 쓰기 시작했다네요.)의 양을 생각하며 읽었네요.
구한말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한국의 재래돼지가 너무 작아서 돼지인지 개인지 긴가민가할 정도라는 기록을 남겼다고 하던데, 우리네 재래되지가 다 자라봐야 37kg이었다니 참 왜소하긴 했네요. 이미 200kg이 넘게 자라는 비육돈들이 있던 시절에 말이죠.
한자 '돼지 시'의 어원처럼 사람도 보릿고개를 겪었던 우리나라 전근대 농민의 가정에서는 돼지에게 먹일 거라고는 부엌에서 나오는 구정물, 풀, 겨나 콩껍질같은 농업 부산물 약간 외에는 주로 사람의 똥일수밖에 없었고, 먹일 사료를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잘먹고 잘 자라는 돼지보다는 사람 똥을 먹고 비료가 되는 똥을 많이 싸는 돼지가 유용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중형견보다 약간 큰 크기라 경조사 때 잡으면 동네 사람들 모두 몇 점씩 먹을 정도는 되었을테고요.
당시만해도 포구가 있었던 마포에서 돼지갈비라는 요리가 등장한 게 1956년 즈음이었고, 제주 흑돼지의 시작이 1960년부터 아일랜드 신부가 도입한 개량품종을 키운 이시돌 목장이었으며, 에버랜드 땅이 원래 삼성이 첨단 양돈 사육장을 구축했던 곳이고, 1세대 돼지고기 브랜드 이야기 등 소소한 이야기들도 재밌네요.
제가 20대 초반에 자취할 때는 제일 저렴한 뒷다리살(후지)를 많이 사먹었는데, 후지가 돼지 정육량의 1/3이나 차지하는줄 몰랐네요. 중국에도 하몽과 유사한 훠투이라는 뒷다리 생햄 요리가 있었다니 신기하고요.
다만 이 책의 참고문헌들을 봤을 때 거의 김태경 박사님께서 혼자 쓰신게 아닌가 싶은데 (아마도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일 것 같은) 분을 공동저자로 표기한 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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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쪽
돼지고기의 건조 숙성은 2014년 숙성한돈, 진저피크, 바람맛 돼지가 선구자적 역할을 했으며, 제주돼지로 교차숙성(습식숙성 후 건조숙성)한 '만덕식당' 그리고 제주 노형동에 있는 '숙성도'가 교차숙성의 대표 삼겹살 식당이다.
208쪽
돼지머리는 내장과 함께 돼지 부산물로 분류되어, 돼지나 소고기에 적용되는 이력제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작업 환경이 위생적이지 못하고 불법으로 유통될 소지가 다분하다. 또한 신고 의무가 없다보니 유통기한을 위조해도 확인할 길이 없어 관련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들은 정육처럼 심부 온도가 섭씨 5도 이하일 때 유통되어야 한다는 법령을 저용받지 않아 미생물이 급격히 증식할 수 있는 상태로 운송한다면 소비자가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299쪽
(화전민들의) 개간 관행은 일제 감점기 때만 해도 보편화되어 있었다고 한다. 돼지를 이용해 화전을 개간하는 방법은 먼저 끊으로 돼지를 묶고, 그 끈의 길이만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말뚝을 박는다. 그러면 끈에 묶인 돼지는 끈 길이만큼의 행동반경 안에 있는 초목 뿌리를 모두 주둥이로 들춰놓는다. 화전민은 돼지가 들쑤셔 들춰놓은 뿌리들을 거두어 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 같은 방법으로 말뚝만 옮겨 박으면 수일 내로 밭이 완성되는데, 개간하려는 화전 둘레에 목책을 설치하고 대량의 돼지를 가두어놓아 방목시키면 된다. 그러면 좀 더 신속하게 화전을 개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돼지들의 배설물이 퇴비로 이용되어서 땅이 비옥해지기도 했다.
(중략)
고대 그리스, 로마, 게르만, 게르트 지방에서도 울창한 숲 지대를 개간하여 목초지를 만들 때 이처럼 돼지를 대량으로 이용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