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국내소설

[김금희] 대온실 수리 보고서(2024)

태즈매니언 2025. 6. 30. 23:37

 

저는 이 전에 소설가 김금희님의 작품을 세 권 읽었지만, <경애의 마음>과 <오직 한 사람의 차지>에 대해서는 혹평을 남겼고, 다른 한 권에 대해서는 독후감을 쓰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정말 압도적이네요. 아직 올해가 절반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올해의 이 작품보다 인상깊은 소설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네요.

클래식 음악에 대해 모르지만 교향악곡이나 바그너의 오페라처럼 연주자가 많이 필요하고 복잡한 활자로 하는 연주를 감상한 느낌이에요. 그렇게 긴 소설도 아닌데 말이죠.

인천광역시에 붙은 섬인 강화도의 서쪽에 있는 섬인 석모도, 대한제국이 망하기 한해 전인 1909년에 건립된 창경궁 유리온실이라는 외부와 단절된 느낌의 공간, 그 공간들에서 살아온 재조선 일본인 할머니, 30대 후반 또는 사십대 초반쯤의 비정규직 여성, 그리고 이혼한 친구의 십대 중반인 딸 이렇게 세 세대의 여성들이 살면서 겪은 사건, 주변사람의 악의로 인한 트라우마와 이를 극복해오는 과정, 그리고 예전의 자신과 같은 상황이 놓여있는 어린 여자아이에게 내미는 도움의 손길과 안타까운 마음을 섬세한 묘사와 표현들로 잘 묘사하고 있네요.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기억에 남아>과 유사하게 건축('설계공모'와 '해체 중수'라는 차이가 있지만)과 사람들의 감정을 잘 병치시키며, 모든 공간(설령 설계도면으로 남은 상상속의 공간일지라도)은 사람들이 보내는 시대를 담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줍니다.

비용지출과 작업결과를 입증하기 위해 쓰여지는 무미건조한 공적인 문서일 뿐인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대온실 수리 작업의 착수에서부터 개장식까지 작업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소설로 풀어내는 글솜씨에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정부로부터 수주한 건축설계사무소의 건물수리를 해내는 과정이나,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고용된 계약직 직장인이 주어진 일을 하고, 중학생이 같은 반 동급생들과의 인간관계를 헤쳐나가는 일이 그다지 다를 바가 없는 일이라는 것을 백 년 넘는 시간과 창경궁 온실과 운서동 주택, 석모도라는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보여줍니다.

노후화되고 파손된 건물에 중수가 필요하듯, 상처입은 사람은 자신의 마음속 기억들을 해체하고 구조를 다시 세우면서 삭은 부분들을 교체하고, 흙속에 파묻혀있던 지장물들을 파내서 건축폐기물로 덤프트럭에 담아 보내버리듯 마음의 대수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

해머드릴로 벽에 마구 박아둔 콘크리트못처럼 사람에게 입은 깊은 상처는 벽지를 바른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그 못자국에 어느 누군가가 건네주는 칼블럭과 피스못을 심으면, 무거운 하중도 지탱할 수 있게 된다는 걸 이 소설을 통해 새삼 배웠습니다.

누군가에게 배신당해서 정말 밉고, 그런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내가 참 한심할 때, 위로가 되어주는 훌륭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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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쪽

장과장은 역시 뭐랄까, 일부러 갈등 상황을 만들어 자기 통제력을 확인해야 하는 사람 같았다. 살얼음처럼 냉랭하게 구는 태도도 자신을 위한 포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공문의 문단 위치나 띄어쓰기, 공사장 안전모자 같은 규칙과 명령들이 만들어주는 영향력만큼 허망한 게 있을까. 그런 식의 만족감이란 겨울의 빈 새둥지처럼 허망하고 쓸쓸하지 않나. 사람들에게는, 진심을 주지 않음으로써 누군가를 결국 무력화하는 힘이 있는데 어떤 부류들은 그런 진실에는 무관심하곤 했다.

156쪽

나는 좋은 부분을 오려내 남기지 못하고 어떤 시절을 통째로 버리고 싶어하는 마음들을 이해한다. 소중한 시절을 불행에게 다 내주고 그 시절을 연상시키는 그리움과 죽도록 싸워야 하는 사람들을.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그 무거운 무력감과 섀도복싱해야 하는 이들을. 마치 생명이 있는 어떤 것의 목을 조르듯 내 마음이라는 것, 사랑이라는 것을 천천히 죽이며 진행디는 상실을, 걔를 사랑하고 이별하는 과정이 가르쳐주었다.

209쪽

장과장 말처럼 그냥 지나가도 좋을 것이다. 어차피 사람들이 원하는 건 사면이 유리로 된 온실의 아름다움이지 그 아래 무엇이 있었는가가 아닐 테니까. 땅 밑은 수리와 복원의 대상도 아니니까. 하지만 질서에는 어긋날 것이다. 그렇게 묻은 상태로는 전체를 알기란 어려울 것이다. 공동과 침하가 계속되겠지. 개인적 상처들이 그렇듯이. 그렇게 한쪽을 묻어버린다면 허술한 수리를 한 것이 아닐까.

317-318쪽

"산아야, 더 억울해지는 건 그 억울한 일에 내가 갇혀버리는 일 같아. 갇혀서 내가 나 자신을 해치는 것."
(중략)
"그럼 하느님이 칭찬하셔?"
"침묵하시지. 기도는 답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다리기 위해 하는 거니까."

335쪽

속이 울렁댔다. 슬픔은 차고 분노는 뜨거워서 언제나 나를 몽롱한 상태로 몰아넣고는 햇다. 그런 극단의 마음과 싸우다보면 아주 간단한 일상의 일도 할 수 없었다. 길을 못 찾거나 버스 번호를 잊어버리거나, 걸어다니거나 물건을 사는 평범한 동작에도 서툴러졌다. 그게 상처로 부스러진 이들이 감내해야 하는 일상이었다. 트라우마는 그렇게 기본적인 행위부터 부수며 사람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410쪽

(작가의 말 중에서)

한때는 근대의 가장 화려한 건축물로,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대중적 야앵의 배경지로, 역사 청산의 대상으로 여러번 의의를 달리한 끝에 잔존한 창경궁 대온실은 어쩌면 '생존자'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건축물과 함께 그 시절 존재들이 모두 정당히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당신에게도 이해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