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에세이(외국)

[커트 보네거트/강한영 역] 나라없는 사람(2007)

태즈매니언 2015. 8. 2. 19:23

 

 

커트 보네거트의 <나라없는 사람>. 나는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고 이름도 처음 들어본 미국 작가가 유고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에세이집이다. 추천이 있어서 읽어봤는데 크게 감흥이 오는 책은 아니었다.

 

반전주의자에 생태주의자로 보이는 저자가 부시행정부를 얼마나 지독하게도 싫어했는지 그가 대통령인 나라에서 사는 자신을 '나라없는 사람'을 자처하는 기고한 글들을 모은 책이다. 위트있는 글들도 보였지만 여든 둘의 고령에 쓴 글들이라 그런지 글 중간중간에 이야기들이 산만하게 흩어지는 느낌이 있었다. 공감은 하지만 비슷한 이야기들을 너무 많이 듣고 읽어왔기에 감흥이 떨어지는 면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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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스탈린 치하에서 자행되었고 지금도 중국에서 계속되고 있는 종교 탄압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이런 탄압을 정당화하기 위해 독재자들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칼 맑스의 말을 들이댄다. 그러나 맑스가 그 말을 했던 1844년 당시, 아편과 아편 추출물은 누구나 복용할 수 있는 유일한 진통제였다. 맑스 자신도 아편을 복용한 적이 있다. 그는 아편을 먹고 통증이 일시적으로 가라앉자 대단히 고마워했다. 맑스는 그저 종교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비탄에 빠진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지 그걸 비난하려던 게 아니었다. 그의 말은 금언이 아니라 일반적인 설명이었던 것이다.

 

82쪽

 

휴머니스트들은 예수를 어떻게 생각할까? 휴머니스트라면 누구나 그렇듯 나는 예수를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그의 가르침이 훌륭하고 대부분의 말이 절대적으로 아름답다면 그가 신이든 아니든 무슨 무슨 상관이겠는가?"

 

126쪽

 

유머는 인생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한 발 물러서서 안전하게 바라보는 방법이다. 그러다 결국 마음이 지치고 뉴스가 너무 끔찍하면 유머는 효력을 잃게 된다. 마크 트웨인 같은 사람은 인생이 정말 끔찍하다고 생각했고 그 끔찍함을 농담과 웃음으로 희석시켰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아내와 단짝 친구와 두 딸이 죽은 후였다. 나이가 들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씩 세상을 뜬다.

 

나 역시 더이상 농담을 못 할 것 같다. 농담은 더이상 만족스런 방어 매커니즘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웃기고, 어떤 사람은 아니다. 나도 한때는 웃겼지만 이제는 아닌 것 같다. 너무 많은 충격과 실망을 겪은 탓에 이제 나는 더이상 유머로 방어를 할 수 없다. 웃음으로 처리할 수 없을 만큼 불쾌한 일들을 너무 많이 겪었기 때문에 까다로운 사람이 돼버린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