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크라이튼/신현승 역] 여행(1988)
마이클 크라이튼이 남긴 논픽션 작품이라길래 호기심이 생겨 빌려왔다.(유일한 작품인줄 알았는데 다른 세 권이 더 있더라.) 구글에 마이클 크라이튼에 대해 검색해보면 그가 널리 알려진 작가, 영화감독에 국한되지 않는 다방면의 경험을 해온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직접적인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 자신은 20대의 자신에 대해 오직 책 읽는 일만 했다고 한 마디만 하고 넘어간다. 직접 경험에 대한 그의 강조는 그가 책읽기를 정말 좋아하는 머리좋은 사람이기에 더 설득력이 있다. <Travels>라는 책 제목은 다른 지역을 방문하는 경험에 국한되지 않고, 새로운 걸 배우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는 것 모두를 포함한다고 느꼈다.
자전적인 에세이다보니 '의과대학 시절' 챕터가 꽤 길게 나오는데 처음 책을 읽고자 했을 때 기대했던 내용이 아니라 몇 번이나 그냥 덮고 반납할 뻔 했다. 책 후반부의 심령술이나 차크라 류의 정신현상에 대한 그의 관심에 대해서는 황당하는 생각도 꽤 들더라. 그래도 믿어달라는 투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에 대해 서술하고 있어서 못견디겠다는 느낌은 없었다. 체험해 볼 기회가 되면 나도 시도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독서, 신체활동, 다방면의 일이라는 서로 양립하기 쉽지 않은 세 가지 면에서 탁월한 성취를 보였던 작고한 한 남자가 내보인 자기 이야기. 군데군데 꽤나 두서없고 서투르게 썼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적어도 여행을 통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발견했던 한 사람의 귀담아들을만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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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쪽
내 성장기에 아버지는 저널리스트이자 편집자였다. 저녁 식탁에서는 항상 글쓰기와 올바른 단어 사용에 관한 대화가 오갔다. 편집에 관한 아버지의 견해가 내 뇌리에 각인되었다.
"'자명한'이란 단어를 사용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정말 자명하다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을 테고, 또 자명하지 않다면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모욕일 테니 말이다.'"
263쪽
잠시 후 그가 나를 한쪽으로 불렀다.
"그렇게 빙빙 돌려서 말하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아. 계속 당신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애쓰게 되거든. 당신이 예의를 갖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러면 당신만 힘들어져. 당신이 원하는 걸 말하고 그렇게 찍으라고."
나는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뒤로 훨씬 나아졌지만 그가 보여주는 솔직함은 흉내조차 내기 힘들었다.
"언제나 진실을 이야기하라고. 당신이 진실을 말하는 순간 문제는 상대방에게 넘어가거든."
코네리는 자신의 신념을 따랐다. 그래서 항상 진실을 말했다. 그는 과거나 미래를 떠나 현재 벌어지는 사건과 부딪치면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 같았다. 그는 언제나 거짓이 없었다. 때로는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을 칭찬하기도 했고, 때로는 둘도 없는 친구에게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그는 그 순간에 보이는 진실을 이야기할 뿐이었다. 따라서 누군가 그의 뜻을 거부한다면 거부하는 쪽에 문제가 있었다.
286쪽
지도에서 보면, 그곳은 내가 항상 히말라야라고 부르던 거대한 지역의 한 부분이었다. 알고 보니 '히말라야'는 내가 알던 지역의 동쪽 부분만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서쪽은 카라코람 산맥이었고, 그곳을 더 지나 서쪽 끝은 힌두쿠시 산맥이었다.
(구글맵으로 한번 확인해보시면 여러분도 놀라실듯)
479쪽
직접적인 경험에 익숙지 않은 우리는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리뷰를 읽기 전까지 책을 읽거나 박물관을 관람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혼자 힘으로 이해하는 데 자신감을 잃고 있다. 경험하기 전에 그 의미를 먼저 알고 싶어 한다. 우리는 직접적인 경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이런 경험을 웬만하면 피하려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