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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페리/정소영 역] 핵 벼랑을 걷다(2015)

독서일기/핵문제

by 태즈매니언 2017. 7. 2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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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북한 핵문제는 휴전선 이남에 있는 어느 한국인도 상황을 바꿔볼 수 없는 문제가 되어버린 것 같은 무력감을 줘서 관심을 접게 만드는 주제였습니다.

송민순 전 장관님의 <빙하는 움직인다>를 읽으면서 페리 프로세스가 임기말 북핵문제보다 팔레스타인문제 해결에 집중한 클린턴의 선택과 조지 부시 2세의 북한에 대한 거부감으로 중단되는 과정을 읽으며 참 안타깝더군요. 이럴거면 차라리 94년에 영변을 폭격하지. ㅠ.ㅠ

우연히 페리 프로세스를 설계한 윌리엄 J. 페리 전 국방장관의 회고록을 발견하고 읽게 되었습니다. 책 내용 중에 북핵 위기에 대한 내용이 14장과 22장의 50페이지 남짓이라 그리 많진 않습니다. 94년 북핵위기 당시 워싱턴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는 재미는 쏠쏠했지만요.

책의 주제는 핵무기는 (심지어 미국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안전을 위협하고, 핵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참사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냥 들으면 별 것 아닌 이상론이지만 이룰 것 다 이룬 90대 노구의 석학이 지금도 홈페이지(http://www.wjperryproject.org/)에 온라인에 노하우를 공개하고 의견을 개진하며 손주 세대가 핵무기의 공포에서 벗어나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핵문제와 관련하여 수십 년의 경력을 쌓은 페리의 시야를 통해서 미국이라는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핵 문제에 대한 고민을 접할 수 있었고요. 그래서 송민순 전 장관님의 책과 보완이 됩니다. 저는페리가 직업 정치인인줄 알았는데 공학도 출신의 기술관료이자 방위산업연구회사 CEO 경력도 있는 다채로운 인물이더군요. 

만 17세의 윌리엄 페리는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육군항공대 사관생도 과정에 등록했다가 과정이 중단되자 대학을 마치고, 육군 공병대 사병으로 일본에서 복무하면서 도쿄와 오키나와 나하의 폐허를 목격합니다. 

이 후 제대군인원호법으로 스탠퍼드에서 수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펜실베니아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호구지책으로 방위산업체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냉전 초기인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설립된 스카웃되어 방위연구소에 소련이 개발 중인 핵무장 미사일에 대한 방어체계에 대해 연구합니다. 26세의 윌리엄 페리는 핵무기로 어떠한 일이 가능한지부터 연구하죠. 

1964년 페리는 연구소 소장의 지위를 벗어던지고, 실리콘밸리에서 당시 태동하던 디지털 기술을 통한 방위 정보분석사업을 수행하는 회사 ESL을 차려 1천 명 이상을 고용한 CEO의 경험을 쌓기도 합니다. 

1977년 카터 행정부의 국방부 연구기술 차관으로 일하면서 당시 재래식 병기에서 소련이 갖게된 우위를 상쇄할 수 있도록 스텔스기술(F-117) 개발, 크루즈 미사일 프로그램, AWACS, GPS 구축 등 기술개발을 통해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유지해 나갑니다.(밀덕들이 관심가지실 내용이 많더군요.)

F-117 프로그램의 진행 과정과 투입된 자원과 엔지니어를 신뢰하는 리더쉽을 보니 요즘 불거진 우리나라 수리온 헬기에 투입된 시간과 자원, 사업발주 대행기관의 역할 등에서 대조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러니 슈퍼파워죠.(외계인 고문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차관 퇴임 후 스탠퍼드에서 강의하며 2선 자문을 맡던 페리는 1993년 클린던 행정부의 국방장관으로 워싱턴에 돌아옵니다. (상원에서 만장일치로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었던데 요즘 워싱턴의 당파주의를 보면 믿기지 않지만 그런 시절도 있었네요.) 

페리 장관은 1991년 소비에트 연방 해체로 신생 핵국가가 된 우르라이나, 카자흐스탄, 벨라루스의 핵무기들을 회수하는 어려운 작업(넌-루거 프로그램)을 해내지요. 미국을 겨냥하던 러시아 핵무기에서 추출한 고농축 우라늄이 미국의 상업용 원자력발전소에서 연료로 쓰이는 아름다운 모습을 이뤄내는 과정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어 큰 감동을 줍니다.

요즘은 EU나 UN의 리더쉽을 기대하는 사람도 없긴 하지만 1992년 보스니아 위기 때 유럽국가가 주축이 된 PKO의 무력함과 이에 대비된 학살 직후 미군의 군사 투사를 보면 역시 국제정치는 리얼폴리틱이구나 싶습니다.

사병출신 국방부 장관으로서 BTL 모델을 통한 군인 관사 개선정책에 집중한 것도 유효했다고 보입니다. 우리나라 공군도 전역을 신청하는 조종사들을 줄이고자 한다면 가족들이 토로하는 불만을 적극적으로 청취해서 삶의 질을 높여줘야 하지 않을까요? 

페리 퇴임 이후 상황을 보면 핵감축은 커녕 핵확산과 신냉전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미국이 핵군축(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 비준)을 안하면서 다른 국가에게 핵무기 보유 억제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Make America great again'을 내세우는 트황상 시대라 더 암울하고, 아들 부시의 고집으로 인해 페리 스스로 미국 외교 최악의 실패사례가 평한 핵무장한 북한과 이웃하고 살아가야 하는 나라 국민이라 더 심란합니다. 

현재 핵무기에 쓰일 수 있는 핵물질의 소재를 파악하고 관리하는 전지구적 시스템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버락 오바마 전임 황상이 격년주기의 핵안보 정상회의를 만들어서 일말의 희망은 있네요. 

냉전시대 핵병력을 구축했던 토대로 그 전력을 해체하기 위한 책임을 기꺼이 떠맏고, 인류 전체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편안한 노후를 포기한 윌리엄 페리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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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쪽

핵공격에 대한 방어체계의 타당성을 알아보기 위해 진행된 계산은 오히려 핵공격의 파괴력에 맞설 이렇다 할 방어책은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의미있는 방어라면 오직 공격이 벌어지기 전에 막는 것 뿐이었다. 
난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핵공격에 대한 무가치한 방어체계에 자원을 쏟아붓는 것이 아니라 그 공격을 방지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근본적인 깨달음이 국방분야에서 일하는 내내 내 삶의 지침이 되었다.

256쪽

미군 측에서 돈이 많이 드는 집중훈련 프로그램의 이점을 완전히 깨달으려면 부사관들의 재복무 비율이 아주 높아야만 했다. 내가 사병들로부터 들어서 알게된 바에 따르면, 입대는 자신들이 알아서 하지만 재복무는 가족에게 달렸다는 것이었다. 높은 재복무 비율과 군인가족의 삶의 질에 대한 만족도 간의 관계는 반박의 여자없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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