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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혜] 백 년 전 영국, 조선을 만나다(2022)

독서일기/예술

by 태즈매니언 2022. 9. 5.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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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좋아하지만 미술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는데, 개항기 우리나라의 문화재들과 가구, 도자기 등 공예품들이 서구의 콜렉터들에게 어떻게 소개되었고 판매되었는지를 다룬 이 책은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도자기와 목가구에 대해서는 관심과 애정이 있어서겠죠.
저는 박사학위 논문을 써보지 못한 사람이지만 자신의 일생에서 수 년 이상을 투자해서 박사학위 논문을 쓴 사람이라면 세상 사람들을 위해 자기가 선택한 논문 주제에 대해서 분량과 상관없이 한 권의 에세이를 써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국에서 석사와 박사로 미술사와 디자인사를 공부한 학자인 저자 홍지혜님의 저자 서문은 1935년 영국의 한 도예가가 반닫이와 같이 수집해온 조선 달항아리를 발견한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고, 이 책의 마지막은 이 달항아리의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대중 교양서로는 상당히 학술적인 이 책이 현재의 한국인들에게 스토리텔링으로 소구하는 부분이 마지막 5장입니다.
저자 서문이 아니라 제1장의 앞부분에 저자와 달항아리의 만남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배치해서 수미쌍관의 형태를 취했으면 에세이의 매력이 더해졌을 것 같아 아쉽더군요. 영화 <레드 바이올린>처럼요. 종종 등장하는 반일 민족주의적인 표현들도 굳이 사용했어야 했나 싶었고요.
독일어 단어 Wunderkammer '놀라운 것들의 방' 이라는 뜻으로 한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진귀하고 놀라운 물건들의 컬렉션 또는 수장고를 의미한다는데, 호텔이 귀족들의 저택에서 응접문화만 분리한 것처럼 박물관과 미술관도 이처럼 부유한 개인 콜렉터들의 수장고에서 시작했겠죠.
제가 사는 아파트가 넓지 않은 지라 현관으로 들어오면 바로 거실이 노출되는데, 그게 싫어서 받닫이로 길이 1m를 살짝 넘는 복도공간을 만들면서 반닫이 위에 도예가 송팔영님이 규산소다를 이용한 트임기법을 사용한 도자기 작품을 올려놨는데 이 책의 말미를 읽으면서 찡했습니다.
좋은 물건은 삶을 풍요롭게 하고, 선물한 사람의 마음을 오래도록 담아서 간직하면서 준 사람이 품은 감정을 기억하게 해주죠. 풍요롭고 다양한 물건들이 생산되고 각자의 취향들이 세분되는 시대가 되다보니 전세계의 물건들이 해운과 항공화물로 넘나들고 있습니다. 이런 물건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옮겨가면서 만들어낼 스토리들이 앞으로도 많아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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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쪽
비록 서양 고객의 수요에 맞춰 새롭게 제작되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출 가구는 전통 방식의 장식 기법과 디자인, 재료 등을 유지하면서 어디까지나 '한국적인 것'으로 남아 있기를 요구받았다. 어쩌면 '진짜' 한국 물건이면서 동시에 서양식 주거 공간 안에서 '이국적이고 흥미로운 인테리어 소품이자 가구로 보이기'까지 해야 하는 딜레마를 출발점부터 품은 채 발전해온 셈이다.
243쪽
일본인들은 안방의 '도코노마'를 고운 화분이나 꽃병, 그림, 꽃 등으로 장식하는 풍습이 있어 여기에 둘 만한 높이 30cm 미만의 꽃병을 선호했다고 한다. 30cm는 도코노마의 낮은 천장을 고려한 높이로, 일본인들은 이를 '사쿠'라는 전통 길이 단위로 불렀고, 여기에 들어가는 꽃병은 '사쿠추보'라고 불렀다. 조선의 백자는 바로 도코노마에 놓을 사쿠추보로 안성맞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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