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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남자의 물건(2012)

독서일기/에세이(한국)

by 태즈매니언 2014. 1. 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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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교수의 신작 이 나왔다.

이 나라 남자들이 보통 자기 이야기를 워낙 못하다보니 같이 경험을 공유하지 않은 다른 세대로서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남자가 참 귀하다. 개인적으로 13인의 저명인사들의 물건에 대한 2부보다 1부를 재미있게 읽었다. 아래는 인상깊었던 구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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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회의 문제는 불안한 한국남자들의 문제다. 존재 확인이 안되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존재로 인한 심리적 불안은 적을 분명히 하면 쉽게 해결된다. 적에 대한 적개심, 분노를 통해 내 존재를 아주 명확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된 방법이다. 불안한 정치세력은 적을 분명히 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하려 한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자꾸 적을 만들어내야 내 불안함이 사라진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자기 이야기가 풍요로워야 행복한 존재다. 할 이야기가 많아야 불안하지 않다. 한국 남자들의 존재 불안은 할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모여서 하는 이야기라고는 정치인 욕하기가 전부다.   사회적 지위가 그럴듯할 때는 그래도 버틸만 하다. 자신의 지위에서 비롯되는 몇 가지 이야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지위가 사라지는 순간 그 이야기도 끝이다. 남자가 나이들수록 불안하고 힘든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도무지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의 물건'이다.

 

   우리의 삶이 재미없는 이유는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모이면 군대 이야기다. 이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한 트라우마를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기 때문이다. 자꾸 반복적으로 한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이유는 뭔가 심리적으로 막혀있기 때문이다(여자들이 모여 앉으면 시집살이 이야기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한국의 철없는 사내들은 이 박탈당한 터치의 경험을 룸살롱에서 만회하려고 한다. 한국의 남자들은 룸살롱에 술 마시러 가는 게 절대 아니다. 술을 마시려면 포장마차나 음식점에서 마실 일이지, 왜 꼭 룸살롱에서 여자를 앉혀놓고 마시려 하는가? 만지고 만져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룻밤에 적게는 수십만 원, 많게는 수백만 원을 내고 룸살롱에 가는 것이다. 아무도 나를 만져주기 않기 때문이다. 아닌가?

 

   우리의 '가족'이 그토록 갈등인 이유는 가족의 사회적 표상이 너무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강요하는 가족의 표상은 죄다 푸른 초원 위에 웃는 얼굴로 서서 파란 하늘을 향해 같은 방향으로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함께 화장실을 쓰고 같은 이불을 덮는 가족이 어찌 매일 행복하고 즐겁기만 할 수 있을까? 남의 가족은 다 행복한데 내 가족만 문제투성이로 느껴진다. 프로이트는 이를 '가족 로망스'라고 정의한다. 지금 내 가족은 진짜가 아니고, 어딘가에 진짜 내 가족이 있을거라는 상상을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명함을 나누는 행동의 대부분은 동물의 수컷들이 서로의 뿔이나 이빨의 크기를 겨루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슈만과 클라라와의 위대한 사랑은 모두 클라라의 자작극(?)이라는 이야기다. 클라라는 슈만이 죽은 뒤 40년을 더 살았다. 너무나 현명하고 아름다웠던 여인 클라라는 자신의 철없던 선택과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든 정당화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슈만의 작품을 알리고 지속적으로 연주하며 그를 위대한 작곡가로 기억하게 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래야만 클라라 자신의 삶에 의미가 부여되기 때문이었다. 젊은 청년 브람스의 그 뜨거운 사랑도 거절해야 했다. 그래야만 자신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정당화되는 까닭이다.  타인의 눈길을 두려워하는 한국 남자들의 심리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수염이다. 오늘날 한국 남자들이 수염을 기른 경우는 거의 없다. 무서워서다. 얼굴에서부터 확연하게 타인과 구별되는 것처럼 두려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수염을 기를 수 있는 사람들은 노숙자이거나 연예인이다. 한쪽은 타인의 시선을 전혀 의식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수염을 기르고, 다른 한쪽은 너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수염을 기른다. 

 

  도대체 그런 비난을 뚫고 그토록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기초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자기 색갈을 분명히 하려면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 용기는 자신에 대한 신념, 즉 자기 실력에 대한 확신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매일 자기 얼굴을 그린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자기 얼굴을 꼭 한 번은 그린다. 이런 기초의 끊임없는 반복에서 자기 확신이 나오고 타인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도 나오는 것이다. 


김정운 <남자의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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