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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세계사(2019)

독서일기/세계사

by 태즈매니언 2019. 12. 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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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 사회경제를 다룬 전작에 이어 대항해시대와 이 시기 유럽과 일본의 교류에 관한 신상목 사장님의 신작을 해가 가기 전에 겨우 읽었다.

 

이번에도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이라는 표현은 잘 들어맞는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대항해시대를 중요하게 다룬다. 하지만 1543년 조선보다 동쪽에 있는 일본의 규슈 다네가시마섬에 포르투갈 상인이 도착한 이래로 나가사키 데지마 섬 상관을 통한 네덜란드의 독점까지 동아시아에서 해적들과 일본이 유럽 상인들과 교류했던 내용은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

 

이 책은 그 생략된 이야기들을 이끌어내는 질문을 던진다.

"유럽인들은 왜, 어떻게, 머나먼 일본까지 오게 되었는가? 대항해시대가 촉발한 도전과 기회의 역사에서 조선과 일본은 어떻게 다른 길을 걸었는가?"

 

포르투갈이 북아프리카 세우타 점령부터 시작해서 '마데이라-아조레스-카보베르데-후추 해안-희망봉-인도 캘리컷-고아-말라카-마카오-규슈 히라도'까지 이어가는 과정은 고교생들이 꼭 알았으면 싶더라. 그래서 요즘 고교생들의 수업시수가 어떻게 배분되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교육부의 <초·중등학교 교육과정>이라는 고시를 찾아보니 일반 고등학교의 단위 배당기준표가 한국사에 무려 필수이수 6단위를 부여하고 있고, 사회탐구는 모두 다 합쳐서 겨우 10단위를 배정하고 있다. 1단위당 50분씩 17회 수업이고.

http://www.law.go.kr/%ED%96%89%EC%A0%95%EA%B7%9C%EC%B9%99/%EC%B4%88%C2%B7%EC%A4%91%EB%93%B1%ED%95%99%EA%B5%90%EA%B5%90%EC%9C%A1%EA%B3%BC%EC%A0%95/(2017-108,20170106)

 

내가 문과로 일반계 고등학교를 다니던 1995~1997년(6차 교육과정 시기)엔 공통사회를 빼고 한국사 주당 2시수, 세계사 1시수였다고 기억하는데 격차가 줄기는 커녕 훨씬 더 벌어졌구나...

 

나도 내수업종, 그 중에서도 민간의 경제활동에 기대는 공공영역에서 일하고 있는 입장이지만 국사를 아무리 많이 배워도 세계사 속에서 적절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오히려 폐쇄적인 세계인식을 심어줄텐데 교육시수의 배분이 적절한지 의문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아카이브를 통해 국뽕 재료가 널려있는 국가인 프랑스의 일반고교 필수과목 시수를 찾아보니 자국사가 별도 과목으로 없는 것 같은데.

http://ncic.kice.re.kr/mobile.wdi.map.do

 

학교에서 안가르쳐주면 동영상을 보고 배우면 된다. 조선 인종-명종-선조 때 일본은 유럽과 어떻게 교류하고 있었는지 애니메이션 <효게모노>를 보면 제대로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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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쪽

 

북위 26도 서부사하라 연안에 위치한 보자도르곶 주변은 무역풍의 영향이 시작되는 곳으로, 연안 항행을 하던 배들은 이 지역에 다다르면 해류와 바람의 영향으로 순식간에 남서쪽으로 떠밀려 해안가에서 멀어지게 된다.

서쪽바다 끝은 절벽이라는 미신이 지배하던 중세 유럽인들에게 이는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다. 게다가 보자도르 일대는 수면 근처에 잠복한 사구들이 많아 연안 항행도 어려운 곳이다. 멀쩡해 보이는 바다에 모래톱이 불규칙적으로 불쑥 올라와 자칫하면 배가 좌초되기 십상이다.

 

143쪽

 

루트를 찾았다고 해서 언제든지 항행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 계절 별로 바람과 해류가 달라지기 때문에 항행 루트와 타이밍의 조합을 찾는 것이 대항해 플랜의 핵심이다. 리스보아에서 출발하는 인도 카레이라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6월 말, 늦어도 7월 초에 맞춰 희망봉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8월 중순에 모잠비크, 늦어도 8월 말에는 동아프리카 중부 몸바사나 말린디에 기항하여 보급을 받은 후 안전하게 인도로 향할 수 있다.

만약 그 시기를 놓치게 되면 아프리카 동부 해안에 머물려 다음해 5월까지 허송세월을 보내거나, 희망봉에서 동쪽으로 진행하여 마다가스카르 외측 항로를 이용해야 한다. 앞서 설명한대로 외측항로는 보급을 받지 못한 채 수천 킬로미터를 항행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265쪽

 

서양식 선박 조선술은 중앙정부에서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는 않았다. 3대 웅번의 하나인 센다이번의 영주 다테 마사무네는 독자적인 서양선박 건조에 나선다. 일본명 다테마루로도 불린 것으로 추정되는 '산 후안 바우티스타'호이다. 멕시코에서 파견된 에스파냐 사절 세바스티안 비스카이노의 협력을 얻어 건조된 것으로 알려진 바우티스타호는 500톤급 스패니시 갤리언선으로 대양 횡단을 너끈히 해내는 수준급 선박이었다.

(중략)

바우티스타호는 1613년, 1616년 총 2회에 걸쳐 태평양을 횡단하여 멕시코와 일본을 오간다. 첫 번째 항해 시에는 막부의 위임을 받은 센다이 번사 하세쿠라 쓰네나가가 멕시코와 통상관계 수립 교섭의 임무를 띠고 승선하고 있었다. 하세쿠라는 멕시코 서쪽 해안의 아카풀코에 도착하여, 육로로 동쪽 해안도시 베라크루스로 이동한 다음, 대서양을 횡단하여 1615년 이베리아 반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에스파냐 국왕 펠리페 3세, 이어 로마로 이동하여 교황 바오로 5세를 알현하고, 쇼군의 친서를 전한 뒤 로마에서 직접 세례를 받고 멕시코, 필리핀을 거쳐 1620년 일본으로 위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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