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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 세상 모든 것의 기원(2023)

독서일기/선사시대

by 태즈매니언 2024. 7. 27.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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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시베리아쪽 고고학 유적지를 발굴하시는 고고학자 강인욱 선생님의 칼럼과 책들을 좋아하는데 작년에 이 책이 나왔더군요. 발간일 한 달 안에 4쇄를 찍은 걸 보니 애독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비록 칼럼을 모은 책이지만 소개된 32가지의 유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크게는 역사학에 포함되지만 선사시대의 유물들을 탐구하는 고고학의 매력을 잘 보여줍니다.
박물관의 고고학 유물들을 기껏해야 두어 문장의 설명과 함께 볼 때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는데, 이렇게 제가 단편적으로만 앍고 있었던 지식들을 연결해서 옛 사람들의 물건이 어떻게 나왔고 왜 요긴하게 쓰였는지를 설명해주는 스토리텔링이 일품이에요.
새로운 문헌의 발견이 드문 역사학과 달리 유적지나 유물의 발굴로 인해 기존의 통설이 폐기되고 연대 추정이 훨씬 위로 올라가는 고고학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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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경남 창녕군 비봉리에서 발견된 8,000년 전 신석기시대 유적에서는 흐르는 물에 도토리가 담긴 망을 넣어서 타닌을 빼고 도토리를 가공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살림터가 발견되었다. 도토리를 묵 형태로 가공해서 먹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뿐이다.
세계의 수많은 고고학자들은 신석기인들이 도토리를 먹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것을 가공한 식품을 실제로 먹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해외에서 한국을 찾은 고고학자들과 막거리를 마시게 되면 나는 꼭 도토리묵을 소개한다.
31쪽
거란이 세계 최초의 소주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들의 생활방식(유목민)과 지리적 환경(만주) 때문이다. 증류주는 순도가 높은 술이기 때문에 많은 양을 갖고 다니지 않아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즉, 유목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는 휴대가 편한 술이었다. 또한, 만주는 겨울이 긴 지역이어서 증류 과정 중 냉각 시 필요한 얼음을 구하기 쉬웠다. 만주 일대에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함께 살았기 때문에 누룩과 같은 술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구하기도 쉬웠다. 한마디로 소주를 대량 생산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는 의미다.
63쪽
조선 후기에 인기가 많았던 소불고기 요리로는 설하멱을 꼽을 수 있다. '눈 오는 날 찾는다'라는 뜻의 설하멱은 일종의 꼬치구이로, 소고기를 불에 구웠다가 찬물이나 눈에 넣어 식힌 후 기름을 발라서 다시 한번 구워먹는 요리다. 지금도 유라시아 일대에서 널리 유행하는 꼬치구이인 샤슬릭도 분무기 같은 것으로 물을 뿌리면서 고 기를 구우니, 요리법이 비슷하다.
76쪽
경북 경산시 조영동에서 발굴된, 삼국시대 이 지역 지도자의 고분에서는 순장자의 발 쪽에서 무려 세 마리의 상어뼈가 통째로 발견되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발굴된 상어뼈는 모두 머리 부분이 없었다.
(중략)
머리가 없는 상어뼈는 당시 사람들이 바닷가에서 상어를 잡은 뒤에 금방 상해버리는 머리와 내장 부위는 제거하고 통째로 염장해서 내륙으로 운송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86쪽
스키타이인들은 가족이 늘어나면 무조건 분가를 해서 본가와는 멀리 떨어진 다른 목초지로 이동한다. 그렇다 보니 이들은 장자가 아버지의 대를 잇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장 나중에 결혼하게 되는 막내가 가업을 계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140쪽
우리나라에서도 1973년 경북 경주시 계림로 고분 발굴 현장에서 카자흐스탄 지역의 황들만 사용할 수 있었던 황금 보검이 출토되었다. 당시에 이 정도로 진귀한 물건은 사람이 직접 전달했을 것이다.
306쪽
카나본 경은 투탕카멘 무덤의 발굴 소식 보도 권한을 영국 <타임>에게만 내주었다. 세계적인 뉴스를 한 매체가 독점 보도하게 된 것이다. 영국 <타임>을 제외한 다른 나라 다른 언론매체들은 <타임>의 특종 보도 독점을 배 아파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미라의 저주가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발굴로 인해 피해를 본다' 등과 같은 흠집 내기식 기사 내지 '아니면 말고' 식의 보도가 줄을 잇는다. 즉 '투탕카멘 미라의 저주'는 근대 이후 이집트를 두고 쟁탈전을 벌이던 서구 열강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벌어진 해프닝이자,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흥미 본위의 저속하고 선정적인 기사를 주로 보도했던 옐로저널리즘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324쪽
문신은 유목 전사들의 계급장 역할도 했다. (중략) 특이하게도 고분의 크기가 클수록 그곳에서 발견된 미라의 몸에 새겨진 문신의 개수도 많았다.

낙서의 문구는 '철로 만든 새' '나를 만날 여신을 구한다.'

 

 

중국제 청동거울의 인기가 올라가자 이를 모방한 국산 본뜬거울이 약 2천 년 전 경남일대에서 널리 유행했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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