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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선 렌츠/노승역 역] 우리몸 오류 보고서(2018)

독서일기/자연과학

by 태즈매니언 2024. 9. 1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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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까치글방입니다. 이런 훌륭한 책을 번역해서 알려주시다뇨. 인간의 신체와 유전자를 통해 진화론을 더 깊게 이해하게 해주고, 인간의 진화를 이해한 바탕에서 의학이나 유전공학같은 분야가 가지는 매력을 알려주네요. 제 올해의 책 후보로 올렸습니다.

어차피 창조론을 믿을 정도의 지적 수준인 사람이 이 책을 읽지는 않겠지만, 시나이반도의 사막신이 우주와 생명체, 인간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던 이들이라도 이 책을 차분히 읽으면 진화는 무작위적이고 엉성하고 부정확하며 무정하다는 진실을 이해하게 될테고, 진화론에 설득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뇌가 비약적으로 커진 이후, 빠른 속도로 문명을 쌓아왔기에 인류의 신체는 여타 영장류 친척들과 달리 대부분 의학의 도움으로 번식기 이후까지 천수를 누리면서 수렴진화의 혜택을 보기는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인간의 재능이 인간 신체의 한계에 승리를 거둔 대가로 사실상 진화가 중단되었으니 자연이 준 부실한 신체를 가지고 계속 살아가는 수밖에요.

인용하고 싶은 탁월한 구절이 정말 많고, 저자 후기는 특이하게 우주론과 연결지어 인류의 미래에 대한 통찰이 담긴 예측이라 흥미로웠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저자 네이선 렌츠의 전작인 <동물에게서 찾은 인간 본성(Not So Different : Finding Human Nature in Animals)>이 번역되지 않아서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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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쪽

헌팅턴 무도병은 증상이 늦게 나타나기 때문에 자연선택의 개입을 피해서 전달될 수 있다. 선택의 힘은 번식이나 생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유전 형질에만 작용할 수 있다. 즉, 생식 연령에서의 생존이 중요하다. 이 시기를 넘기면 유전자는 이미 다음 세대의 유전자풀에 전달된 뒤이다.

120쪽

바이러스는 부모에게서 자녀에게 유전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바이러스가 유전되지 않는 이유는 부모의 유전자를 자녀에게 전달하는 일과 무관한 T세포만을 감염하기 때문이다. 유전자를 전달하는 것은 정자와 난자뿐이다. 하지만 정자나 난자를 만드는 세포 중의 하나가 레트로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자녀는 부모에게서 말 그대로 바이러스 유전체를 물려받을 수 있다.
(중략)
우리 몸속의 세포 하나하나에 들어 있는 DNA의 8퍼센트 가량이 과거 바이러스 감염의 잔존물이다. 10만 구에 가까운 바이러스 사체가 들어 있는 것이다. 조류와 파충류같은 먼 사촌과도 이 사체를 공유하는 것을 보면 최초의 바이러스 감염은 수억 년 전에 일어났고, 그 뒤로 이 바이러스 유전체가 조용하고 무의미하게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160쪽

인간의 생식계통 전체가 비효율과 부실한 설계로 가득하다. 요약하자면 인간은 늦게 성숙하고, 배란을 숨기고, 건강한 정자와 난자를 만드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착상하지 못하거나 염색체 개수가 적거나 많은 배아를 만들고, 엉뚱한 곳에서 임신을 시작한다. 심지어 만사가 순조롭게 풀리더라도 분만 중에 태아와 산모가 죽을 가능성이 엄청나게 크다.
사실은 인체의 모든 기관계와 생리계 중에서 생식계통이 가장 말썽이며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도 가장 크다. 생식이 종의 생존과 성공에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것은 의아한 일이다. 이 문제들의 상당수가 여느 동물에게는 아예 없거나 적어도 훨씬 드물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수치스럽다.

192쪽

영아의 느린 면역반응은 정말로 위험한 감염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어느 부모에게 물어보아도 자기 아기가 늘 아프다고 말할 것이다. 아이가 병을 달고 사는 한 가지 이유는 바이러스에 대해서 아직도 면역을 형성하는 중이기 때문이지만, 또다른 이유는 어떤 벌레와 싸워야 하고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면역체계가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우리의 면역체계는 외부 물질의 끊임없는 포화에 익숙해져서 거기에 대응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면역체계는 생후 몇 달부터 몇 년에 걸쳐서 무해한 물질을 대부분 접했다고 판단하여 성숙 상태에 안착한다.
그러나 면역체계는 유아 시절의 학습기에서 벗어나면서 달라지기 시작한다. 새로운 외부 물질을 접할 때에 더 민감해지는 것이다. 알레르기가 추한 몰골을 드러내는 것이 이때이다. 면역체계는 땅콩기름 같은 무해한 물질이 건강을 전혀 위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맞서 싸워야겠다고 판단한다.

204쪽

유성 생식, DNA, 세포를 가지면서 암을 가지지 않을 수는 없다.
(중략)
생쥐와 토끼처럼 단명하는 종은 돌연변이율이 높고 암에 대한 방어 수단이 미흡해도 감당할 수 있다. 결국 암이 모두를 집어삼킬 테지만, 이것은 타협의 산물이다. 진화는 암으로 죽는 개체에 대 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이것은 돌연변이에서 비롯하는 다양성을 얻기 위해서 감수할 만한 희생이다.

266쪽

우리는 다른 어떤 동물보다 더 결함투성이인 듯하다. 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환경에 훌륭히 적응했기 때문이다.
(중략)
인류의 신체 형태는 진화가 우리를 모든 면에서 다재다능해지도록 빚어내면서 받아들인 타협의 산물이다.
(중략)
우리가 몸에 덜 의존할수록 적응과 진화의 압박이 줄어든다. 수많은 문제를 생물학 대신 기술로 해결하는 지금, 우리의 몸이 최상의 상태가 아니라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중략)
진화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종의 모든 유전적인 변화를 일컫는 말에 불과하다. 생존과 번식을 통해서 승자와 패자를 가려내는 자연선택은 종이 진화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진화라고 하면 자연선택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그밖이 진화적 요인들도 그에 못지않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271쪽

시간이 지나면 이러한 출생률 차이로 인해서 인류의 민족적 구성이 달라질 것이다. 또한 이는 이 다양한 민족 집단의 생식 성공률이 무작위적이지 않음을 입증하는데, 이것은 진화의 전제 조건이다. 생존의 차이가 (적어도 서구 선진국에서는) 주요 현상이 아니라는 점은 사실이지만, 생식의 차이는 분명히 주요 현상이다. 이 차이가 생식과 관련한 의식적 선택의 결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생식 성공률이 여전히 불균등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진화의 원동력이다.

280쪽

진화는 우리를 완전히 이기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중략)
범위를 넓혀서 인종이나 종교, 국가가 같은 사람들을 "우리"에 포함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인간은 부성애와 모성애를 느끼도록 진화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가 아닌 자들을 미워하거나 두려워하도록 진화했다.
(중략)
우리가 외계인을 보거나 그들의 소리를 듣거나 그들과 접촉하지 못한 것은 그들의 문명이 스스로의 이기심, 기술 발전, 그밖에 무수한 악화 요인의 무게에 짓눌려서 자신들의 태양계를 벗어날 능력을 얻기도 전에 붕괴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중략)
우리의 진화적 설계를 보건대 임박한 붕괴는 불가피할 수 있다. 우리의 욕구, 본능, 충동은 자연선택의 산물인데, 자연선택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혼란, 죽음, 파괴는 우주와 모든 종의 진정한 자연 상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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