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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경] 화투치는 고양이(2011)

독서일기/국내소설

by 태즈매니언 2016. 9. 3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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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책 읽을 시간 확보하기가 쉽지 않네요. 지난 한 달 동안 논픽션만 줄창 읽어서 그런지 소설이 끌리더군요. 긴 호흡으로 읽을 여유가 없어서 단편집을 찾았고요.


아홉 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작품마다 다양한 연령대의 남녀들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셔서 중간에 같은 작가가 맞나 의아하기도 했습니다. 마치 노련한 무사가 창, 검, 도, 곤, 권으로 십팔반무예를 구사하는 모습을 보는 느낌이었죠.


단편들을 넘겨가면서 제가 좋아하는 김애란, 천명관, 박민규, 김연수, 최인석씨의 소설들에 대한 기억들이 스쳐가네요. 입담이 좋으시고, 소재에 대해서 공들여 관찰하고 느낌이라 겹쳐보였던 것 같습니다.


아홉 편 중 특히 <화투 치는 고양이>, <초식>, <不聽 竟欲之 受笞一百而去>, <산딸기며 오디며 개암 열매며,>가 제 취향에 와닿았습니다. <에어 베드>의 마지막 문장도 정말 찡했고요.


<화투치는 고양이>는 저도 어릴 적 조회 때마다 시키던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도 몰랐고, 받침도 많고 발음이 꼬이기 십상이었던 기억도 나고, 시골에서는 애가 야뇨증이 있거나 소심하거나 하면 두꺼비, 오리피나 닭피 등 별걸 다 먹이고 했던 걸 봤던 지라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다만, 제가 민화투 룰 밖에 몰라서 할아버지 이야기 중에 이해를 못하는 부분들이 아쉽더라구요.


<초식>은 도축장 도부의 손길을 기다리는 소의 모습과 지극히 무감정인 작업절차들을 작품 속 인물들의 인생경로와 대비하면서 읽게 되더군요. 제 몸도 스무 살 때 다 크고 나서는 먹고 싸고 있을 뿐이네요. 이 말많고 타이핑만 많이 하는 덩치 큰 생물은 해체하면 막말곱창과 무지힘줄, 욕심살만 나오니 해체하는 것도 돈낭비죠. 소돼지는 해체하면 버릴 게 없는데. 도부의 작업 절차에 대한 묘사가 생생한 것도 좋았습니다.


<불청 경욕지 수태일백이거>는 제목을 한자로 써야 맛이 나네요. 두 시공간의 이야기가 겹쳐있는데 '스무 살'이 상란을 사랑하면서 얻게 된 득의회심에 대한 열변이 자못 설득력이 있었고, 그 일갈에 대한 향좨주의 태형 일백대 요법이 배앓이에 대한 약손처럼 그럴법 하더군요. 태형은 회초리 정도의 도구를 썼다니 곤장처럼 석 대를 맞아도 살점이 찢어지는 것처럼 고통스럽진 않았겠지만 그냥 그렇게 좋다는데 감사합니다 하고 예뻐해주지.뭘 그리 튕겼는지  --;


<산딸기며 오디며 개암 열매며,> 부모들의 그런 사랑놀음을 봤으면 이럴 법 하네요. 병식이의 장례식장에 먼저 갔다가 그녀와 만났더라면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었을까 싶더군요.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시골출신이 아니면 '개암'이 뭔지 모를 수도. 도토리랑 밤을 섞어놓은 모양인데 개암이 바로 '헤이즐넛'이라네요. 헤이즐넛 커피향은 절대 안나더라구요. 혹부리 영감처럼 개암열매를 섣불리 이로 깨물어 까먹으면 치과 신세를 져야할 수 있으니 조심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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