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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콜리어/윤승용, 윤세미 역] 전쟁, 총, 투표(2009)

독서일기/아프리카

by 태즈매니언 2017. 6. 26.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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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에서 아프리카 경제연구를 하고 계시는 폴 콜리어 교수님이 <빈곤의 경제학:The Bottom Billion>을 출판하고 2년 후에 펴낸 책입니다. 280페이지 남짓이라 얇은 편인데(명묵님 추천도서 중 드물게 ㅎㅎ) 내용은 정말 충실하네요. 

전작에서 폴 콜리어 교수님은 50여개의 밑바닥 국가들의 실패원인을 크게 '분쟁의 덫', '천연자원의 덫', '나쁜 이웃을 둔 내륙국의 덫', '작은 나라의 나쁜 통치의 덫'의 네 범주로 나누어 분석했었죠. 

이 책은 네 번째 범주인 '작은 나라의 나쁜 통치의 덫'을 중심으로 밑바닥 국가의 정치불안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대학원의 제자들과 공동으로 연구한 논문들을 교양서에 맞게 간추린 책입니다. (경제학자가 쓴 책이지만 전작처럼 그래프나 수식은 하나도 안나와서 읽기 편합니다.)

55여개 아프리카 국가의 정상들을 강의실에 모아놓고 쿠데타나 내전으로 학살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은퇴하는 방법에 대한 사례 중심 컨설팅 강의와 선진국 위정자와 국제기구 고위직들을 위한 밑바닥 국가 정치 안정화 프로젝트 마스터 플랜을 합쳐놓은 것처럼 정책보고서처럼 읽었어요. 

목차는 크게 '현실 부정하기'와 '현실 직시하기' 그리고 '현실은 변화한다'의 세 파트입니다. 논의의 배경-현안 분석-대안 제시의 전형적인 삼단계 구성이라 깔끔하죠.

폴 콜리어 교수는 먼저 전작의 논의를 보충해서 근대적 국민국가(nation state)를 이루지 못한 국가들에게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주어진 선거제도가 어떻게 국민들에 대한 안전보장과 공공서비스 제공이라는 국가로서의 기본적인 두 가지 책무의 실패를 야기하는지 사례와 통계적 근거를 들어 제시합니다. 

국가의 탄생과 역할이 무엇인지, 폭력의 독점을 통한 안전보장과 공공서비스의 제공이 집단 내 인간들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등 세금을 받아 먹고사는 공공영역 종사자들이 고민해볼 내용들이 참 많았습니다. 

특히 제1장부터 제6장까지에서 제시한 내용들이 종합선물세트로 엮인 사례인 제7장 '코트디부아르의 붕괴'와 국가론 축약본이라 할만한 제8장 '국가 건설과 국민 국가 건설'을 읽을 때는 한 국가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구조적인 특징을 찾아내고, 또 이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까지 찾아내려 노력한 학자적 노력에 찌릿찌릿한 감동이...마지막엔 기억력 나쁜 독자들을 위해 앞에서 이야기한 내용들을 친히 정리도 해주십니다. ㅋ

종족집단을 보험제도에 비유한 아이디어, 종족다양성과 정체성의 정치학의 현실, 내전과 쿠데타의 단기/장기 비용편익분석, 쿠데타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대통령을 위한 처방, 폭력을 독점한 집단이 어떻게 의도치 않은 공공재 공급자가 되는지부터 현대국가까지 국가의 진화 등등 보물같은 생각들이 정말 많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제시되는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의 상황을 보니 미국이 2차 대전 후 서유럽에 제공한 안보와 자금제공을 통해 국가의 책임성에 대한 신뢰를 유지해준 마셜플랜이 자국의 번영을 의한 탁월한 선택이었고, 단일민족이라 손쉬운 면은 있었지만 밑바닥 10억들에게 간절히 필요한 안보와 공공서비스를 미국으로부터 장기간 제공받은데 힘입은 대한민국 만들기의 성공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하게 되네요. 

저자가 제시한 대안에 대해서는 판단할 깜냥이 안되지만 차라리 국제사회가 지금의 아프리카를 그냥 내버려 두면서 아예 해외 자금도피와 디아스포라를 차단하고, 대륙 내부에서 고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빨리감기로 돌리는 것이 어떤가 하는 생각도 해봤는데 너무 잔인한가요? 고대 중국을 통일하고 중화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창시한 진왕 정의 위업처럼 발전경제학의 불균형 성장전략으로 해당 지역을 제패할 독재자를 후원하는거죠. 

저자도 아프리카의 칠왕국을 거쳐 아프리카 합중국으로 규모의 이익을 향유할 때를 시뮬레이션 해 보고 있고요.

뭐, 이런 명분없는 정책이 국내의 지지를 받을 리도 만무하고, 비단 리더가 사라진 세계가 아니라도 하더라도 아프리카에 있는 천연자원들이 다른 강대국의 개입을 불러와 끊임없는 전쟁으로 살육만 늘리겠지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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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쪽

우리는 최빈국을 우리처럼 만들고 싶지만, 우리가 현재의 여기까지 어떻게 헤쳐왔는지를 잊어버린것이다.

198쪽

현대 국가들은 과거에 다양한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현대 국가의 국경선은 원시적인 민족 결속력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폭력적 수단을 독점하기에 가장 적당한 영토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가라는 중요한 안보 문제가 고려돼 생긴 것이었다. 

203쪽

복리의 힘은 계속해서 낭비한 차용자의 재정을 갉아먹어 최후의 승리는 더 나은 신용등급을 가진 국가에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합스부르크는 거대한 제국으로 남미에 금광과 은광이라는 담보물을 가졌고, 네덜란드는 조그만 지역 국가였지만 국민들은 정치적 책임성을 갖고 있었다. 복리가 힘을 발휘하려면 시간이 걸리지만 네덜란드는 이자율 6퍼센트에 대출할 수 있었던 반면, 합스부르크는 22퍼센트까지 내야 했다. 

207쪽

사실 식민 지배 권력은 매우 다양한 종족을 관리 가능한 국가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현대 국가 형성에 필요한 두 과정이 모두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보 확보가 가능한 지역이 형성되지 않았고, 따라서 그러한 지역 내 거주민으로 이루어진 상상의 공동체도 생성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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