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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친구가 되어주실래요?(2010)

독서일기/아프리카

by 태즈매니언 2014. 1. 9.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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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다큐멘터리 에서 처음 알게된 故 이태석 신부씨의 에세이집을 읽었다. 어머니가 읽으시다가 협탁에 놓아둔 걸 봤는데 아마도 아버지가 묻히신 담양의 천주교 묘지에 잠들어계신다는 점 때문에 어머니도 더 관심이 가셨나 보다. 하지만 이런 분은 건강을 잃고 일찍 떠나시고, 이 분이 남기신 향기는 외양 좋아보이는 종교사업가들의 샤넬향수가 되어서 치장에 쓰이는 건 아닐까?.


p. 25

고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쟁고아들이 많아 우리가 운영하는 기숙사에도 열댓 명의 남자 고아들이 있지만 여자 고아들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부모를 잃어도 사촌이나 팔촌 아니면 사돈의 팔촌에 이르는 먼 친척이라도 여자 아이는 꼭 거둬 키우려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렇게 여자들이 특별 우대를 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결혼을 하기 위해 여자를 데리고 오는 데 남자 측에서 여자의 미모와 건강 상태에 따라 적게는 30마리에서 많게는 200마리까지의 소를 건네야 하기 때문이다.


여아 선호 사상, 예쁘게 잘 치장한 여자들의 모습, 여자를 보물처럼 아끼고 잘 키우려는 것 등등 외형적인 것들만 보면 이곳은 분명히 '여자들의 천국'이다. 하지만 자세한 내막을 알고 나면 이곳은 외려 '남존여비 사상'이 철저한 곳임을 알게 된다.

(중략)

더욱 서글픈 것은 결혼 때 팔려 온 여인네들은 죽도록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줄줄이 아이들을 낳고 소처럼 일해야 한다. 말 그래도 '소 값'을 해야 하는 것이다.


p. 90

복음을 전파함에 있어 교리서나 성경에 있는 내용을 주입하는 것을 넘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삶을 통해 주위 사람들의 영혼을 건드려 움직이게 하고 감동하게만 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완벽하고 발 빠른 복음화가 또 있을까 싶다.


p. 125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삶의 여정은 맨발로 장미 덩굴을 걷는 것과 같다."는 돈 보스코 성인의 말이 떠오른다. 청소년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사는 삶은 겉으로 보기엔 장미꽃과 같은 화려한 삶처럼 보인다. 그러나 장미꽃에 감추어진 가시들처럼 항상 따르는 크고 작은 많은 어려움과 아픔을 그들과 함께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또 그에 필요한 인내심이 있지 않으면 그들과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하지만 가시들 때문에 생긴 발바닥의 굳은살 덕에 미래의 험난한 정글을 그들과 함께 쉽게 헤쳐 나갈 수 있기에 가시처럼 많은 어려움 또한 감사할 수 있게 된다.


p. 159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프리카에선 물가가 엄청 싼 것으로 상상하고 있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모든 것이 두 세배의 가격이다. 그나마 구할 수 있는 것의 가격이 그 정도이고 구할 수 없는 것은 가격의 몇 배를 지불한다 해도 구하기 어렵다. 그중에 하나가 계란이다. 더위 때문인지 먹이가 부족해서 그런건지 닭들이 영계들처럼 작은데다 일 년에 겨우 몇 번 밖에 알을 낳지 않으니 여기선 계란 구경하기가 매우 힘들다.

(중략)

지금은 여기서 백 킬로미터 떨어진 '와우'라는 곳에서 계란을 살 수 있긴 하지만 북쪽 카르툼에서 비행기로 실어 오다 보니 한 알에 5백원이나 하는 계란이 그야말로 '금란'이다.


p.194

다르푸르의 아이들은 정말 우리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들임이 틀림없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희망을 잃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며 사랑을 잃은 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데에 그들이 카톨릭이나 개신교면 어떻고 이슬람교면 어떤가? 그들이 우리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꼭 우리가 믿는 종교로 개종해야 한다는, 내 안에 잠재된 강박적인 사고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예수님이 바리새들에 대한 특별한 알레르기가 있었음을 분명히 느낄 수가 있다. 이는 종교의 틀에 인간들을 끼워 구속시키려는 바리새들의 사고와 행동에 맞서 '종교는 인간을 구속하는 정신적인 틀이 절대 아니다.'고, '오히려 인간을 더 자유롭게 만드는 정신적인 해방의 틀이다.'는 것을 외치기 위함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p. 198

성년식의 광경은 이렇다. 숫돌로 잘 간 단도같이 생긴 날카로운 전통 칼의 끝을 세워 '거거걱 거거걱' 하는 소리를 내면서 이마 앞쪽에서 시작해 후두부까지 이어지는 긴 줄의 상처를 낸다. 이 줄을 '고르놈'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 줄로 끝나면 좋으련만, 이마 양쪽으로 적게는 네 줄 많게는 열 줄의 상처(부족마다 줄의 수가 다르다.)를 낸다. 상상을 해 보라! 이마는 얼굴은 피범벅이 되고 5분에서 10분 동안 칼로 생살을 베는 아픔을 눈물 한 방울 없이 참고 견뎌 내야 하는 아이들의 심정을, 견디지 못하고 눈물이라도 비일 시엔 어른 대접도 받지 못하고 평생 '겁 많은 자'로 낙인 찍혀 살아야 하기 때문에 차라리 시작을 하지 않았으면 안 했지 시작을 한 이상 절대로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


고르놈 예식에서 통과된 아이들은 다음 단계인 '생니 뽑기'라는 예식으로 넘어간다. 고르놈 예식 때 쓰던 같은 칼의 끝을 잇몸 안에 집어넣어 말 그래도 멀쩡한 생니를 후벼 파내어 버린다. 한두 개도 아니고 자그마치 여섯에서 여덟 개를 마치 없이 칼끝으로 후벼 파낼 때의 아픔은 그것을 당해 보지 않은 우리 같은 '어린이들(이마에 고르놈도 없고 아랫니를 빼지 않은 우리를 아직 어른이 아니라며 놀리는 사람들이 많다.)' 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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