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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게스트/김은수 역] 아프리카, 무지개와 뱀파이어의 땅(2004)

독서일기/아프리카

by 태즈매니언 2017. 7. 18.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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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서점 구경하다가 발견한 책인데 2004년에 나와서 이미 너무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닐지 망설이다가 절판본이라 본 김에 사버렸습니다. 저자 로버트 게스트는 <이코노미스트>지의 기자더군요.

 

로버트 게스트는 남아공에서 7년 동안 거주하며 아프리카 곳곳을 취재하면서 '아프리카는 왜 지난 30년 동안 유일하게 경제적으로 후퇴한 대륙이 되었는가?'라는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그전에 일본과 한국에서 특파원 생활을 했던 런더너라서 빈곤문제가 더 충격적으로 느껴졌을 것 같네요.

 

옮긴이 김은수님은 2004~2006년까지 남아공 주재 대사로 계셨던 직업외교관이셨습니다. 박사과정에서 제게 항공법과 국제법을 가르쳐주신 존경하는 박원화 교수님의 외무고시 동기이자 후임 남아공 주재 대사셨더군요. 원서가 2004년에 나왔고 번역판이 2009년에 나오다보니 변동된 내용들이 좀 있던데 역자주로 보충해주셨고, 각 장마다 리딩 포인트와 더 알아보기를 통해서 코멘트해주신 내용들도 유용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김은수 대사님은 번역하신 책이 출간되기 직전에 중국에서 돌연사하셨다고 하는데 고인의 명목을 빕니다.

 

책 내용은 번역판 제목에 '뱀파이어의 땅'이라고 묘사한 것처럼 법치를 유지하고 계약을 지키거나 재산권을 보호해주지 않고, 뻔뻔할 정도로 일반 국민들을 갈취해온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네임드 열전(列傳)에 가깝습니다.

 

아프리카의 빈곤 문제에 대해서는 폴 콜리어의 <빈곤의 경제학>과 <전쟁, 총, 투표>를 통해서 워낙 풍부하게 접했던 터라 생경한 이야기는 없었지만, 학자의 연구가 거시적이라면 기자의 관찰은 개별 케이스들을 전달해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벌써 거의 15년 전 이야기라 지금하고 좀 다르겠지만요.

 

책의 서론은 이 책 전체의 내용에 대한 요약에 해당합니다. 제1장 <뱀파이어의 나라>는 로버트 무가베가 통치하는 짐바브웨를 다룹니다. 로디지아가 짐바브웨로 독립한 1980년부터 현재까지 집권하고 있는 93세(1924년생..)의 무가베는 족쇄 채워진 대륙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인물이라 할만 하죠. 오래 살기도 하고, 국민들의 피를 빨아먹는 점 모두 뱀파이어와 똑같은 인물입니다. (무가베가 쇼나 족이었다니..쇼나 조각 ㅠ.ㅠ)

 

선거인 명부를 조작하고, 무가베가 국회의원의 1/5을 임명하는 나라. 휘발류 최고가격을 수입가격보다 낮게 정한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요?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폭력행사의 실상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는데 구글에 'zimbabwe torture'를 넣고 이미지 검색을 해보시면 온갖 끔찍한 사진들이 다 나옵니다.

 

제2장 <다이아몬드 채굴은 무덤파기>는 세계 10대 산유국에 들어가는 데도 불구하고 국민들에겐 전혀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앙골라의 현실, 주변국들의 먹음직스런 암소가 되어 다이아몬드,금, 코발트, 콜탄 등 광물자원을 약탈당하는 콩고민주공화국의 사례를 꽤 자세히 서술합니다.

 

제3장 <권리없는 재산>은 부동산에 대한 등기와 같은 공시제도가 없고, 자기 마을의 추장이 인정해주는 바에 따라 집에 대한 권리와 경작지에 대한 관습상 소유권이 인정되기 때문에 은행에서 대출도 받을 수 없는 재산권 보호제도의 취약성을 다룹니다.

 

법적으로 인정되는 재산이 없는 소말리아 유목민과 말라위 시골 주민의 사례를 보면서, 일본이 1910년부터 1918년까지 8년에 걸쳐 지적도를 만들고, 삼각측량을 통해 토지대장을 만들어준 게 얼마나 60년대 이후의 발전에 얼마나 귀중한 밑거름이 되었는지 인식하게 되었습니다.(사회학과 신용하 교수 패 경제학과 이영훈 교수 승 ㅠ.ㅠ)

 

제4장 <죽음에 이르는 섹스>는 그나마 이 책이 쓰여진 이후로 에이즈 피해에 대한 예방정책이 나아지고 있어서 다행이고요. 제5장 <뱀의 아들은 뱀>은 르완다 후투족과 투치족의 비극(녹슨 마체테 날로 썰려 천천히 죽어가는 고통을 피하고자 총으로 쏴달라고 돈을 지불하기도 했다고 합니다.)과 나이지리아의 종족분쟁, 남아공 흑인우대정책의 어긋한 수혜자들을 통해 뿌리깊은 종족주의가 야기하는 비극을 보여주고요. 제6장 <똑똑한 원조와 자유무역>은 보츠와나의 성공사례와 잠비아의 실패사례를 대조하며 원조의 성패는 원조를 받는 국가가 합리적인 경제정책을 잘 이행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면서 선별적인 원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양동신님의 글을 통해서 여러 번 전해듣긴 했지만 제7장 <굶주린 도로와 기업 투자>를 보면서 빈곤한 국가에 항만, 도로와 같은 교통인프라가 얼마나 절실한지 새삼 느꼈습니다. 열악한 도로때문에 정글에 사는 시골 농민들은 비누, 도끼날, 등유같은 필수품들을 대도시보다 훨씬 비싸게 사고, 자신들이 재배하는 얌, 카사바, 망고 같은 수확물들을 싼 값에 팔수밖에 없으니까요.(도시로 가져가 팔자니 중간에 상하거나 운반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도로 사정이 좋은 나라는 결코 기근을 겪는 일이 없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죠.

 

제8장 <황무지에 통신망 갖추기>에서는 과학기술에 대한 정치인들의 부정적인 태도가 국민들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국민의 1/4이 굶어죽어 가는 상황에서 GMO식품은 독이라며 미국이 제공한 GMO콩과 옥수수 수령을 거부한 잠비아 대통령 레비 음와나바사의 어이없는 패기...), 이동통신처럼 중간단계를 건너 뛸 수 있는 사업을 꿈꾸는 기업가들을 옥죄는 인허가의 덫, 교육과 기술인력 개발의 중요성 등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제9장 <무지개 나라를 넘어>에서는 주재 경험을 통해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인 남아공의 미래에 대해 전망과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로버트 게스트는 흑인우대정책에 따라 약화되는 시장경쟁, 해고가 거의 불가능한 경직된 노동법, ANC가 짐바브웨의 ZANU처럼 흑화될 가능성 등을 발전의 걸림돌로 꼽고 있습니다.

 

박대정심한 내용을 원하시면 폴 콜리어 교수님의 책이 낫지만 아프리카 각국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이 책도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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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쪽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공식적으로 등기가 된 토지는 1%에 불과하다. 따라서 토지에 대한 경작권과 소유권의 법적 보장은 경제적 사회적 약자 계층에게 담보대출이라는 신용 확보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저자가 지적하고 있듯이, 아프리카의 경제 발전을 위한 토대 마련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김은수)

 

221쪽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퀘베르그 원자력발전소는 단 1명의 흑은만 고용했다. 이곳은 남아공에서 가장 비밀스런 장소 중 하나였고, 남아공 흑인은 모두 '보안상 위협' 대상으로 간주되어 경영진은 흑인 고용을 꺼렸다. 그러나 백인이 할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었다. 퀘베르그에서 일하는 유일한 그 흑인은 발전소 경비견으로부터 도망가는 일을 하면서 월급을 받았다. 이렇게 해야 경비견이 흑인을 물어뜯도록 훈련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276쪽

 

부유한 나라가 (농업)보조금을 삭감하거나 관세를 낮추면 곧바로 가난한 나라 농민이 이익을 본다. 우간다의 화훼업자의 경우 보조금을 많이 받는 화란 업자에 대해 유럽의 겨울철이 되어야 가격 경쟁력이 생긴다. 그러나 보조금이 감축되면서 우간다 업자들은 연중 수확을 하게 되었고, 우간다의 화훼 수출은 1990년대 중반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2001년 1,600만 달러 규모로 증가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간다 농민이 164%에 달하는 미국의 땅콩 수입 관세율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미국에 땅콩을 팔아 벌어들일 수 있는 돈에 비하면 화훼 수출은 말 그대로 땅콩에 지나지 않는다.

 

291쪽

 

2002년 10월 어느 목요일 오후 2시, 나는 카메룬 남동부 정글에 있는 작은 마을 베르투아로 향하는 큰 트럭에 1,600개의 흑맥주 상자와 함께 몸을 실었다. 직선거리로 간다면 런던에서 에딘버러, 또는 뉴욕에서 피츠버그까지의 거리에 해당하는 약 500km의 거리다. 전체 여행에 걸리는 시간은 휴식을 위한 야간 정차까지 포함해 18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실제로는 4일이나 걸렸다. 그리고 도착했을 때에는 처음 실었던 물량의 2/3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304쪽

 

외국 기업은 아이디어와 기술을 들여온다. 아무리 변변찮은 의류공장일지라도 재봉 기계와 회계 프로그램이 깔린 컴퓨터가 있을 것이고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가난한 나라로서는 기초적인 제조업 기술을 마스터하는 것은 번영으로 가는 사다리의 첫 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다.
(중략)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의 문제는 현지인들이 탐욕스런 다국적 기업에게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것이 아니라 탐욕스러운 다국적기업이 이들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321쪽

 

나는 신뢰 부족이 아프리카에서 일을 성사시키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증거를 수없이 보아 왔다. 나이지리아에서는 5성급 호텔에서조차 투숙객은 그들이 묵을 객실 요금은 물론, 호텔 매니저에 의해 책정된 식사비와 전화 사용료를 현금으로 미리 지불해야 한다. 아부자(Abuja)에 있는 힐튼 호텔에서 숙박료를 달러로 지불하는 데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호텔 회계원은 각 지폐를 한 장씩 스캔하여 위조 지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후 각 지폐의 일련 변호를 세 부씩 기록하여 함께 일하는 동료 중 누구도 달러를 훔쳐가지 못하도록 했다.

 

356쪽

 

한 가지 문제는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교육 예산을 좌지우지하는 이들은 엘리트 층인데 이들은 자기 자녀들에게는 대학교육을 무료로 시키기를 바라면서도 초등학교 교육조차 받지 못하는 일반 대중에게는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잠비아에서는 대학생들이 거의 모두 부유층 가정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각 대학에 지출되는 정부 예산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예산보다 135배나 더 많다. 니제르에서는 90만 명의 농촌 어린이들이 아무런 교육도 못 받고 있지만 4,700명에 불과한 대학생들은 매년 국민 평균 소득의 10배나 되는 장학금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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