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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2022)

독서일기/국내소설

by 태즈매니언 2023. 6. 6.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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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남부군>, <지리산>까지 무게감있는 지리산 빨치산 이야기들을 충분히 들어서 이 소설의 소재가 지리산 빨지산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알자마자 흥미가 떨어졌습니다.

2023년이면 무려 70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이니까요. 이미 2000년대 초반까지 충분히 울궈먹은 소재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도 페친분들의 호평이 많고 분량도 얇길래 보게 되었네요.

다 읽고 나니 주인공 아버지와 그 주변 사람들을 비현실적으로 각자 사연이 있고 따스하게 그린 것 같아 드라마 시나리오같다는 소감이 들었습니다. "긍게 사람이제."가 이 책의 주제의식이긴 한데 꼭 1980년대에 방영된 멕시코의 청소년 드라마 <천사들의 합창>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얼마전에 100쇄를 찍은 은희경 작가님의 <새의 선물>을 저도 무척 인상깊게 읽었지만 화자인 주인공 진희가 12살의 시선이라는 게 이물감이 들었던 것처럼요.

제 고향이 구례에서 그리 멀지 않은 보성이다보니 익숙한 전라도 사투리와 소설가 성석제를 떠오르게 하는 재치있는 표현들은 좋았습니다.

이제 해방직후 좌우갈등과 지리산 빨치산은 무거움을 덜어내고 이런 식으로 정리하고 지난 역사로 떠내려보내는 게 맞다는 생각도 들고요.

유격전으로 진행된 내전, 연좌제와 반공주의의 시절 모두 어차피 지금의 시대에 무겁게 다뤄봤자 그 비분강개가 제대로 전달이 될까요? 나이든 사람들의 마음에도 더깨가 켜켜이 쌓인 상태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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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쪽

빨갱이의 딸인 나는 오빠를 생각할 때마다 죄를 지은 느낌이었다. 빨갱이의 딸인 나보다 빨갱이의 조카인 오빠가 견뎌야 했을 인생이 더 억울할 것 같아서였다. 자기 인생을 막아선 게 아버지의 죄도 아니고 작은아버지의 죄라니!

187쪽

내 부모가 은혜를 갚기란 진작에 튼 터, 자칫하면 은혜갚기가 내 몫으로 오롯이 남을 판이었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천형에 가난까지 물려받은 것만으로도 지긋지긋한데 빨치산이 입은 세상의 온갖 은혜까지 물려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부모의 대화에 자주 등장하여 분명 몇번이고 들었을 소선생의 장남 이름을 기어코 기억에 남기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봤자 세상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오늘 그는 방명록에 이름을 남길 것이고, 나는 간혹 그 이름을 들여다보게 될 것이며, 그때마다 내 아버지가 입은 은혜를 나날이 뼛속 깊이 각인시킬 밖에는 도리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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