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리처드 세넷/김병화 역] 짓기와 거주하기(2018)

독서일기/도시토목건축

by 태즈매니언 2025. 2. 7. 23:36

본문

 

리처드 세넷의 책에 대한 호평을 워낙 많이 들어서 <짓기와 거주하기>를 빌려왔는데, 추천하셨던대로 걸작이네요. 이 책도 제 올해의 책 후보로 올려봅니다.

호모 파베르 삼부작 중 개인의 일하기에 대한 <장인>, 사회성과 협력에 대한 <투게더>을 먼저 봤어야 하지 않나 싶네요.

다방면에 박학다식하고 사상사를 꿰뚫고 있는 저자의 책을 낑낑거리면서 겨우 읽긴 했습니다. 저는 영민한 지성은 앞선 사상가들의 핵심 관점과 아이디어를 마치 찰흙을 주무르듯 자기 용어로 재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이해력이 이런 지성에 탄복할 정도는 되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세넷은 도시계획실무를 한 사람은 아니고 MIT 미디어랩 등에서 지역사회 수준 혹은 국제기구 차원에서 인문학적인 도시연구를 해온 학자인데, 프랑스어 단어를 이용해서 건설되는 것을 '빌'로, 사는 것을 '시테'로 구분하네요.

세넷은 먼저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읍락이 아닌, 거주자나 지배자의 계획이 들어간 때부터 21세기 스마트시티에 이르기까지, 도시계획 역사의 영웅들과 그들이 설계한 세계적 도시의 사례를 중심으로, 도시계획의 사상사를 여러 도시계획가와 건축가, 조경가, 사회학자 등의 성과물과 생각들을 인용해가며 정리합니다.

전체 주택수의 2/3가 아파트이고, 국민 과반수가 아파트에 살고, 특히 저는 아파트 거주율이 85%인 세종시에 살고 있다보니 저자가 보기엔 '개성없이 표준화된 빌'의 거주에 너무 절여진 상태라 지루해하며 꾸역꾸역 읽었습니다.

저는 30가구가 사는 농촌마을 어귀의 밭에 세운 오두막도 있고, 해외여행을 통해 세계 각국의 대도시들을 잠깐이라도 구경하고 걸어보면서 당연히 다른 형태의 도시들의 매력이 있다는 건 알게 되었지만, 한국의 기후에서 현대고학기술이 제공하는 인프라와 대도시라는 플랫폼의 장점을 가장 비용효율적으로 누리면서 환경부하도 적은 방식이 이미 나와있는데, '빌과 시떼의 단절 해소'라는 현학적인 옛날 논의들을 복기해야하나 싶었거든요.

그래도 엄청 똑똑한 할아버지(사스키아 사센의 남편이시더군요.) 의 강의를 듣는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읽어냈습니다. 번역자 김병화 선생님께서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을지.

말미에 나오는 번역자의 글로 책 내용을 아주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1부가 도시계획의 진화사를, 2부는 빌과 시떼의 전지구적 차원의 균열 현장을, 3부는 현대도시에서 열린 도시 만들기, 4부는 기후변화 등 도시의 본질적인 비틀림을 다룹니다.

저자는 결론에서 건축가 비야게 잉겔스가 제안한 맨해튼 섬 해안단구를 자신의 견해에 부합하는 아이디어로 제시하고, 본인이 살아본 독일 베를린 시내 칸트슈트르세 구역을 현실의 사례로 제시합니다.

어차피 20세기 중반의 백인 노인의 시각이라 저와 같을 수는 없겠죠. 그래도 이 책 덕분에 송도신도시의 유사판인 세종시에서 살면서, 제가 왜 숨이 막히고 흰개미 군집에 사는 것 같으 답답함이 들었는지, 오피스텔 한 채를 사서 매달 월세 6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돈을 대출까지 받아가며 밭과 농막을 사는데 써야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저한테는 코스트코와 백화점, 아울렛이 있고, 역사적 건물들이 개축되서 상업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휴먼스케일 원도심이 있으며 인구는 50~100만 사이에, 지역간 철도교통이 훌륭하게 구축되어 있고, 차로 30분 이내에 자연과 농촌마을로 이동할 수 있는 도시가 제가 살고 싶은 빌과 시떼가 조화된 도시입니다.

오송역 때문에 망하긴 했지만, 백화점과 아울렛이 들어오고 세종시 인구가 80만이 되고 공주와 연담화가 되면서 공주시 원도심에 예술가와 예쁜 가게들이 생긴다면 그럭저럭 제가 생각하는 바라는 도시와 비슷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기후야 제가 이민을 가지 않는 이상 해결할 수 없지만요. (저는 미국 남부 미드 센추리 랜치하우스 주택디자인이 보기 좋던데 겨울 난방비를 생각하면 ㅠ.ㅠ)

-------------------------------------------------

116쪽

우리의 일상적인 도시계획 속에 들어온 것은 르 꼬르뷔지에 전기의, 경험이 결핍된 신념이다. 아테네 헌장은 20세기 내내 도시계획 안내서 역할을 했다. 부아쟁 계획과 헌장 모두 전후 시카고의 로버트 테일러 주거 단지부터 오늘날의 상하이 고층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주택 프로젝트에 영향을 끼쳤다. 르 꼬르뷔지에의 옥외 거리 생활 말살은 실내 쇼핑몰을 예고했다. 복잡한 장소에서의 삶에 따르는 혼란을 첨단기술로 줄이려 하는 스마트 시티의 한 버전을 주도하는 것도 부아쟁 계획과 헌장이다.

215쪽

(MIT 미디어랩의 윌리엄 미첼이) <비트의 도시>를 쓴 이후 '그' 스마트 시티는 사실상 상이한 두 종류의 도시가 되었다. 첫 번째 스마트 시티(한국의 송도신도시 같은)에서는 기술이 사람들에게 거주하는 공간의 사용법에 대한 처방을 내린다. 빌이 시테에게 지시를 하는 것이다. 두 번째 스마트 시티에서는 기술이 조정 역할을 할 뿐 시떼의 어지러운 활동을 지우지는 않는다. 처방적 스마트 시티는 정신적 상해를 입힌다. 시민들을 바보로 만든다는 말이다. 조정적 스마트 시티는 복잡한 인간적 차이 속에 사람을 참여시킴으로써 정신적 자극을 가한다. 이 대조는 우리의 더 큰 프레임에 들어맞는다. 처방적 스마트 시티는 닫혀 있고, 조정적 스마트 시티는 열려 있다.

242쪽

송도 유형의 스마트 시티들도 구글처럼 세렌디피티를 포용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처방이란 도시가 어떤 기능을 수행할 것인지 사전에 예견하여 그것을 공간과 건설된 형태 속에 정확하게 설치한다는 의미다. 송도 유형의 스마트 시티는 우연성을 두려워한다. 내 조교의 말에 따르면, 그 스마트 시티는 장소의 경험을 "가볍게" 취급했다.
(중략)
스마트 시티에서 당신은 호기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275쪽

물론 빠른 교통수단은 도시를 돌아다닐 때 꼭 필요하지만 자동차와 기차는 인지를 손상시키는 기계이기도 하다. 빌의 계획가들이 극복해야 할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만약 그들이 걷기의 지식을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보도도 없고, 골목길도 없고, 벤치도 없고, 공공식수대도 없다면? 공공 화장실도 없다면? 이런 것들이 없으면 도시는 바보가 된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