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 대해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어마어마한 돈을 들인 티가 뚝뚝 흐르는 쇼룸이나, 서울특별시 한옥보전지구 등 지자체의 지원금을 받느라 조선후기 양반집 같은 한옥들이 대부분이라 아쉬웠습니다.
그러던차에 마흔 살이 넘어서 한옥 건축에 입문해서 10년 넘게 문화재와 한옥을 고치는 일을 해오셨고, 전남 장흥의 옛날 한옥을 매입한 다음 직접 고쳐서 살고 계시는 정종남님의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건축비는 세 배 가까이 들어가는데, 지자체가 임명한 자문위원입네 하는 전문가들이 온갖 트집을 잡으면서 케케묵은 조선 양반집처럼 보이게 지으라고 온갖 지청구를 늘어놓는 걸 죄인처럼 꾸역꾸역 따라야하는 서울 사대문안 주민이 아니라면, 아파트에 살면서 이런 시골집을 고쳐서 별장처럼 활용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됩니다. 2022년에 출간된 김미리 작가님의 <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처럼요.
요즘 시골집에 대한 규제가 풀리는 추세라서 저가의 농어촌주택이면 1가구 2주택자로 간주되지 않는 기준들도 계속 완화될테니까요.
그런데, 올해 1월부터 시행된 개정 농지법에 따라 가능해진 농촌체류형 쉼터를 보면 꽤 잘만든 10평 이동식주택 제품의 제작비가 5~7천만 원인 시대입니다. 과연 오래된 시골 한옥집을 이 정도 예산을 들여서 냉난방과 단열이 비슷한 수준으로 고칠 수 있을까요?
저는 만약에 세컨하우스로 시골 한옥을 매입한다면, 현대 주택 건축이라고 보지 않고, 눈높이를 낮춰서 옛날 민속공예품을 크게 돈 들이지 말고 가성비 좋게 고쳐나가면서 쓸 것 같습니다.
읽어보니 저자 정종남도 한옥을 예전의 구법과 소재, 가공법을 너무 고집하지 말자는 유연한 시각이시고, 지내력과 집의 기초, 하중 등 건축의 기본을 강조하셔서 신뢰가 가네요.
방이 좀 좁아지는 걸 감수하고 흙벽과 인방 사이의 재료의 분리 현상으로 인한 틈새를 폼을 쏴서 막고, 벽에 각재로 짠 틀을 대고 그 위로 단열재와 석고보드를 겹쳐대서 단열보강, 방 천장의 노출 서까래를 포기하고 중천장으로 단열층 만들기, 무거운 데다 겨울철 동결융해의 반복으로 인한 동파나 잡초로 인한 습기 피해에 취약하고, 황토까지 덮어 기둥이 감당하는 하중을 높이는 전통기와 말고, 얇고 가벼운 강판기와 추천, 달고질 같은 노동집약적인 지반다짐 대신 콘크리트 온통기초 타설도 마다않는 모습이 합리적으로 보였습니다.
네이버 블로그를 보니 저처럼 이 책을 읽고서, 저자분께 아예 괜찮은 옛날 한옥집부터 골라서 대수선해달라는 예비건축주까지 만나서 일감을 따셨네요. 만약에 제가 나중에 시골 한옥집을 갖게 되면, 저도 이런 분께 대수선을 맡기고 싶습니다.
https://blog.naver.com/karan27n
이 책에 한옥의 석축과 돌담 쌓는 법이 상당히 자세히 나와있어서 관심있는 분들께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예전 시골집들을 보면 공들여쌓은 돌담은 참 아름답고 오랜 세월이 지나도 튼튼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요즘 이런 돌담의 매력을 알고 돌담을 쌓으면 지자체에서 지원해주는 사업도 있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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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쪽
촌집은 거기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Q코드 같다. 휴대폰 카메라를 갖다 대면 곧바로 영상이 뜨고 순간 빠져들게 되는 것처럼, 나고 자란 옛집에 가면 생각지도 못한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래서 촌집은 이렇게 옛 주인을 소환한다.
54쪽
마당은 여름철 한옥의 대청마루를 한층 시원하게 해준다. 원리는 간단한데 한여름 작열하는 햇빛으로 마당 쪽 공기가 뜨거워져 상승하면, 집 뒤축 석축이나 풀밭 쪽 찬 공기가 공백을 메우기 위해 움직인다. 이때 열어놓은 대청마루 뒷문을 통해 빨려 들어온 찬 공기는 집을 통과해 마당으로 가게 된다. 대류 현상이다. 그런데 만약 마당을 풀밭으로 만들어 놓으면 당연히 이런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오히려 집이 습해지고 후덥지근하기 쉽다.
또 마당은 방안을 환하게 밝히는 간접 조명 구실을 한다. 한옥의 마당은 보통 고운 마사토나 굴린 백토라 불리는 산모래를 깔아다진다. 황토색이거나 백색에 가까운 엷은 황토빛을 띤다. 여기에 햇볕이 내리쬐면 굴절된 햇살이 반사각에 의해 방안 천장에 부딪혀 실내를 은은하게 밝혀준다.
67쪽
가끔 나는 방과 대청 구분 없이 "한옥의 천장은 서까래가 보여야 이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개인 취향에는 뭐라 할 말이 없지만, 건축구조의 합리성과 방한/단열이라는 기능면에서는 넌센스 같다.
(중략)
장흥 촌집은 고미반자나 종이반자 방식의 중천장을 설치해 지붕 단열을 강화했다.
서까래 사이 틈서리에 폼을 쏘아 공기 흐름을 차단하고 그 밑으로 각재를 사용해 중천장 틀을 만들었다. 석고보드를 두 겹으로 덧댄 중천장에 한지를 발라 마감했다.
이렇게 하면 지붕 열 손실은 거의 막아낼 수 있게 된다.
106쪽
강판기와 지붕은 얇고 가벼우며 넓은 철판을 가느다란 각재에 박아놓은 구조다. 지붕 면적이 크지 않고 높이도 낮은 일반 농가의 경우라면, 꼼꼼히 고정만 해도 버텨내는 데에 문제가 없다.
132쪽
"한옥에는 못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낭설이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결구 보강 철물은 조선시대에도 널리 사용된 '전통재료'다. 목재끼리의 짜임에 철물을 쓰지 않을 뿐, 지붕의 목조공사에서 철물은 필수다.
234쪽
많은 사람들의 로망처럼 직접 도면을 그리고, 계획하고, 시공까지 하는 아름다운 그림도 있다. 촌집을 사서 고치면서 현재 내가 겪는 중이다. 사서 고생할 동기나 필요가 분명한 분이라면, 작은 규모로 권하겠다.
251쪽
오랜 세월 단련된 장인의 연장은 몸 자체다. 몸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하는 머리.
궁리하는 힘이야말로 목수의 필살기다.
집을 대하는 진정 어린 자세, 장인 정신이 궁극의 연장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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