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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 정치인(2023)

독서일기/국내소설

by 태즈매니언 2025. 6. 15.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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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 소설가님은 2023년에 월급 사실주의 동인에서 낸 단편집<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에 실린 <숨바꼭질>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지방에서 올라왔고 급여는 꽤 받는 괜찮은 직장에 취업했지만, 서울에서 자기가 살 공간을 임차하고, 마련하기 위해 악전고투하는게 얼마나 기운빠지는 일이고, 엄빠찬스로 급행열차를 탄 또래들의 모습을 볼 때의 열패감을 잘 묘사했던 인상깊은 작품이었죠.

이 작품은 법대를 졸업하고 기자로 일했던 저자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는데, 초고를 드라마 각본으로 고쳤다가 다시 소설로 완성했고, 드라마 판권계약도 되었다고 합니다.

<미스 함무라비>의 국회의원 버전이라고 하면 적절할 것 같은데요. 혹시 국회의원 출마를 종용받고 있거나, 차후에 출마하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한 번 보시길 권하고 싶네요.

잘 보면 2020년 즈음에 실제로 있었던 사건과 등장인물들의 모티브가 된 사람이 누구인지도 어느 정도 떠올릴 수 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판타지스러운 설정도 꽤 있지만, 작년말 계엄도 그렇고 한국 정치와 국회를 배경으로 하면서 개연성을 운운하며 비판하는 건 상당히 조심스럽죠.

이 장편소설의 장점은 경쾌한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어떻게 되고, 어떻게 일을 하는지에 관해서 제도상의 권한과 제약, 물밑에서의 역학관계를 잘 녹여냈다는 점입니다.

국회의원 정수를 현재의 300명에서 더 줄여야 한다는 공약이 툭하면 나오는데, 저는 국회의원을 500명 정도로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창시절이나 회사생활을 생각해봤을 때, 개개인에게 명목상 권한이 동등한 상태에서 숫자가 300명인 조직보다 500명인 조직이 누군가의 전횡이 지속되기도 힘들고, 소수가 결탁해서 무리한 결정을 밀어붙이는게 힘들다는 사실은 다들 동의하시지 않나요?

제가 좋아하는 <웨스트윙>과는 결이 전혀 다르겠지만, 이 책이 빨리 드라마나 영화로 나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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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일부 철거 용역이 강제집행 현장 근처에 탑차를 세우고 라면 상자나 음료수 박스를 길 위에 뿌려 사고로 위장하는 전략을 쓰고 있었다. 전략이 먹혀들어 철거에 성공하면 좋고, 실패하더라도 큰 손해를 입지 않으니, 철거 용역에겐 남는 장사였다.
"그놈들은 다 꿰뚫어 본 거야. 우리가 고작 그것밖에 안 되는 부류라는 걸. 난 더는 안해. 아니! 못 해!"

26쪽

강제집행은 늘 법원 퇴직 공무원 출신인 특정 집행관을 통해 이뤄졌다. 여기에 한 용역업체가 이들과 한몸처럼 움직였다. 이들이 개입한 강제집행은 법에 따른 공무 행위인데도 지나치게 사적인 이해관계로 엮여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50쪽

"제가 어디서 들은 말인데요. 내가 이 사람과 함께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면 사랑이고, 이 사람을 통해서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면 사랑이 아니래요. 오빠는 어느 쪽이에요?"

143쪽

상임위 법안 심사는 법안소위에 참석한 전문위원으로부터 법안의 제정 및 개정 이유와 수정 의견 등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문위운은 법안을 상임위에 배정하기 48시간 전에 의원들에게 검토보고서를 배부한다. 의원 대부분이 법안보다 전문위원의 의견이 담긴 이 보고서를 먼저 접하기 때문에 전문위원의 의견이 의원의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253쪽

"좋은 차만 준비하면 무슨 소용입니까? 운전할 사람이 있어야죠. 정치는 결정하고 책임지는 행위입니다. 의원님께서는 눈 감고 역주행만 하지 않으셔도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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