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냉전 직후의 도취된 분위기와 달리 한 세대가 지난 지금의 세계를 보면 새뮤얼 헌팅턴 등의 예언대로 민족과 종교 등 전통적인 가치에 기반한 정체성의 정치가 힘을 얻고 있지요.
그런데, 세속화되고, 가족이나 친척, 향촌마을 같은 1차 집단이 해체되어 버린 한국은 기성 종교도 교인 머리수에 권리금을 매기는 장사를 하다보니, '신을 브랜드로 대체한 다단계회사', '끌어당김의 법칙 류의 자기계발 팔이',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위로를 주는 무속'이 그 종교의 자리를 대체하네요.
2023년에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김희재 작가님의 이 소설은 1인가구가 가장 많은 이 시대에는 교주나 교리가 없이 외부와 단절되서 홀로 있을 수 있는 공간만 제공해준다면, 그 공간에서 홀로 경험하는 자책과 반성, 정화의 경험을 통해 삶의 희망을 얻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연결짓고 있었습니다.
특정한 공간과 구조물들이 사람들의 종교적인 열정을 북돋웠다는 사실이야 선사시대부터 유적들에 남아있지만, 이든 제사장과 다수의 믿는 사람들이 제의를 행하는 공간이지 홀로 이용할 수 있는 종교적 공간에 대한 갈구는 생경하네요. 고해성사도 들어주는 사제가 있는데 말이죠.
저는 무언가에 대한 종교적 믿음이 인간의 본능도 아니고, 홀로인 사람은 외로울수록 다른 사람이나 자연을 찾게 된다고 생각해서 사회적 교류에서 단절되어 있는 소설속 등장인물들이 외부와 단절되어 홀로 있을 수 있는 '탱크'라는 공간에 집착한다는 걸 납득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내내 살아가는 대부분의 공동주택들이 외려 탱크와 가깝고, 홀로 침잠하고 싶은 사람들은 등산, 낚시, 솔로캠핑 등 자연 속 개방된 공간을 찾겠다 싶어서 저한테는 공감이 안되는 소설이었습니다.
작품 속 두수 씨같은 인물이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접착제같은 사람인데 점점 드물어져간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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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쪽
두수 씨는 말했다. 적어도 여기에선 오래전에 정착된 것을 제멋대로 바꾸려고 하거나 지적해선 안 된다고. 여기가 작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도 무언가를 입맛대로 바꿀 생각을 하면 더 작고 아무것도 아닌 우리가 바뀌게 된다고. 없어지게 된다고. 그러니 너도 조심하라고. 그때 두수 씨의 표정은 단호하지도 무서워 보이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약간 슬퍼 보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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