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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수] 언캐니한 것들의 목소리(2025)

독서일기/에세이(한국)

by 태즈매니언 2025. 7. 2.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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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영화 <가여운 것들>을 보고 찾아보니 원제가 <Poor Things>였던데 영화의 느낌상으로는 <Uncanny Things>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책을 선물받으면 좋은게 제가 전혀 안보는 종류의,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들을 접하게 될 수 있는 복권을 긁는 스릴이 있다는거죠. 다행히 오늘 긁은 복권은 당첨이네요.
 
문학박사님께서 쓴 '히어로, 빌런, 괴물, 신, 재난'이 (명시적 혹은 묵시적으로) 나오는 영화, 드라마에 대한 철학적 비평글을 모은 에세이인데, 어렵지만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제가 모르는 용어와 이름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요즘은 챗GPT한테 물어가며 읽으면 되니 예전보다 한결 수월하네요.
 
제가 인상깊게 봤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를 통해 히어로와 빌런에 대해 재해석한 부분이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심야식당>을 통한 일본인들의 재난에 대한 대응과 관계된 집단주의 해석도 공감이 갔고요.
 
신에 대한 부분도 엄청 공감했지만, 제가 영화 <거룩한 소녀 마리아>(2014), <퍼스트 리폼드(2018)>을 안본 상태로 읽어서 저자 서동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를 다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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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2쪽
 
특정한 사물이나 사건을 이른바 '정상성'의 차원으로 인식할 때 세계는 선명성을 갖는다. 하지만 이러한 선명성은 이면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일종의 폭력성을 띠고 있다. 히어로나 빌런, 신과 괴물 등은 가장 선명한 의미를 지닌 존재들로 받아들여진다.
(중략)
존재나 사건을 언캐니의 관점에서 다루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정된 시선은 단편적 인식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단편적 인식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비극적인 사태이다. 그런 면에서 언캐니는 '억압된 것의 귀환', 즉 부정당한 진리의 드러남이다. 추방하고 은폐해야 했던 낯선 진리를 표면에 드러내는 것, 그리고 용기와 함께 그것을 응시하고 대화하는 것은 가려져 있던 세계의 맨얼굴을 환대하는 것이다.
 
30쪽
 
권력 집단에게 악은 핵심적인 구성요소이다. 명령의 힘은 위반에서 나온다. 권력이 범법자를 필요로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35쪽
 
2019년 북미 간 핵무기를 둘러싼 갈등에서 트럼프의 '로켓맨' 발언과 북한 당국의 '늙다리 망령'같은 언쟁은 '너를 끝장내버리겠어' 또는 '너를 끝장낼 수 있어'의 심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기대의 반어적 표명이다.
 
65쪽
 
신이 죄인을 특별히 더 사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죄인들만이 견딜 수 없는 지루함에 빠져있는 신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기 때문이다. 악인과 죄인은 히어로와 신을 살아 숨 쉬게 한다.
 
246쪽
 
언캐니한 존재들은 실로 불편한 자들이다. 그들은 일종의 침전물이다. 물 위을 부유하던 찌꺼기들이 뭉쳐 가라앉은 오염물 혹은 폐기물이다. 사람들은 침전물을 제거하면 호수가 정화될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하나의 역설이 존재하는데, 침전물 자체가 바로 호수라는 것이다.
(중략)
다시 말해 언캐니한 존재들을 소거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안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침전물로 인해 정화된 호수가 가능하듯, 사회적 공존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침전물인 그들을 응시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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