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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이타루/정문주 역]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독서일기/에세이(외국)

by 태즈매니언 2014. 11. 28.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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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농법으로 생산한 재료를 가지고 천연효모균을 이용해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드는 일본의 시골빵집 '다루마리'의 빵집주인이 쓴 책. 자연농법으로 사과를 재배했던 <기적의 사과>를 집어들었을 때의 느낌으로 고른 책인데 중간에 그 책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더라.


읽으면서 일본은 산업화를 우리나라보다 더 일찍 시작했지만 전통적인 가내수공업과 공방의 문화를 어느 정도 간직온 저력이 있다는 걸 느꼈다. 그렇기에 이러한 빵집도 5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은 많다. 공동체문화나 '꾼'과 '쟁이'와 같은 장인의 전통이 깡그리 지워진 맨땅에서 시작해야하는 차이점이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 아닐까? 좋은 물건을 제 값을 주고 산다는 문화는 그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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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쪽


"정부와 제분회사는 밀에서 검출되는 농약이 기준치 미달이라고 보고하고 있어요. 그리고 밀가루를 가공해서 먹는 양을 생각하면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고 하죠. 하지만 제가 아는 제빵사들은 대부분 코가 안 좋거나 피부가 상하더라고요. 이타루씨의 코나 제 손도 잔류농약 때문 아니겠어요?"


132쪽


"비료도 농약도 안 쓰면 농사꾼은무슨 일을 하죠?"

"내가 자연재배 얘기를 하면 열이면 열, 그것부터 묻더라고. 농사꾼은 땅을 만들지. 산과 들에 식물이 뿌리를 내린 경우를 보면 그 땅은 수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그래서 부드럽고 따뜻하다네. 그런 땅을 만들어주면 식물은 자연히 자기 힘으로 자라게 되지. '자란다'는 게 포인트야. 비료를 줘서 키우는 게 아니고 자라게 하기 위한 땅을 만드는 거지. 환경을 만들어주는 작업, 그게 자연재배의 핵심적인 일이야."


143쪽


순수 배양균의 힘을 빌려 쓰지 않겠다는 생각과 통화는 원칙이 또 있다. 우리는 설탕, 버터, 우유, 계란을 배제한 '뺄셈' 방식으로 빵을 만든다.


보통 빵집에서는 대개 이런 부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상식이다. 반죽을 촉촉하고 부드럽게 해주고, 풍부한 풍미와 향을 내며, 반죽의 노화를 막으면서 다루기도 쉬워지기 때문이다.

설탕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설탕은 효모의 영양 공급원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자양강장제에 해당한다. 효모는 당분이 있으면 움직임이 활발해지기 때문에 재료가 좋고 나쁘고를 따지지 않고 발효를 활성화한다. 따라서 순수 배양해서 발효력이 세진 이스트를 쓰고, 거기에 설탕을 첨가한 후 발효를 활성화하는 발효촉진제를 더한다는 것은 약물을 복용시킨 육상선수에게 핏발을 세우고 전력질주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방식이 상식이 된 이유는 사람들이 '덧셈'이라는 방식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천연효모를 쓰면 발효가 안정적이지 않으니까 강한 발효력을 지닌 이스트를 개발했다. 균을 빌려와서 쓰는 것이다. 그랬는데도 발효력이 부족하다 싶으니 이번에는 설탕으로 영양을 듬뿍 공급했다. 결국에는 발효촉진제까지 쓰는 지경에 이르렀다..


210쪽


개성이라는 것은 억지로 만든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상품을 만드는 사람이 진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원래 가진 인간성의 차이가 기술과 감성의 차이, 발상의 차이로 이어질 때 나타나는 것이며, 필연적인 결과로서 드러나는 것이다.


225~226쪽


어느 날 마리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런데, 모코랑 히카루를 보면 부러워. 항상 옆에서 부모랑 다른 어른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를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낄 수 있잖아. 나 어릴 때는 아버지가 회사를 다녔으니까 어떤 일을 하시는지, 어떻게 일하시는지 전혀 상상을 못했거든."


내 경우는 아버지가 학자라는 특이한 직업을 가졌던 탓에 아버지가 일을 하는 분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서 오랬동안 빈둥거렸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확실히 일상생활 속에 일이 있고 그 속에서 자라는 장점이 있을 것 같다.


물론 집에서 일을 하면 아이들에게 멋진 모습만 보일 수는 없다. 빵이 잘 안 만들어지면 나는 금새 어깨가 처진다. 마리는 팔다가 실수라도 한 날이면 풀이 죽어 백배사죄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이런 모습까지도 기억했으면 좋겠다.


저희들이 눈을 떴을 때 아빠는 이미 일터에서 굵은 땀을 흘리고 있고, 집안에는 온통 향긋한 빵 굽는 냄새가 퍼졌다는 것, 손님들로 가게가 북적이면 엄마와 아빠는 힘들어하면서도 무척 기뻐했다는 것, 녹초가 될 때까지 일한 뒤에는 '한 잔의 술'과 함께 이 세상 최고의 행복을 나눴다는 것. 부모가 열심히 일하며 사는 모습을 기억 속에 깊이 새겨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환경에 살면 아이들은 분명 자신의 힘으로 큰다. 우리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힘을 비축해서 건강하게 자라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애정을 듬뿍 쏟고,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이는 것 정도다.


(중략)


그러고 보니 과거 궁목수들은 집안에서 후계자를 내는 세습이 당연했다 한다. 10년 전의 나였다면 폐쇄적이고 낡아빠진 방식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이해가 된다. 아마도 생활 속에서만 계승되는 기술과 정신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고, 일상생활과 함께 몸에 배게 해야만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뜻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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