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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통계가 전하는 거짓말(2008)

독서일기/수학

by 태즈매니언 2015. 3. 6.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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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의 고정패널이기도 했던 정남구씨는 한겨레신문 경제전문기자다. 이 책은 그가 한국언론재단의 수습기자 교육과정 중 한 과목인 <통계를 활용한 취재보도> 강의에서 자료로 쓴 책이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보도된 사례들이다보니 재미있게 잘 읽힌다. 손석춘씨가 썼던 <신문 읽기의 혁명>의 부록과 같은 느낌이었다. 


'의도된 오보'를 목적으로 한 군데만 걸려라는 심정으로 보도자료를 뿌리는 기관들이 참 많다. 그렇다보니 매일 새로운 기사를 내야하는 기자들이 낚이지 않기가 쉽지 는 않겠지. 하지만 기삿거리를 위해 꼼수를 눈치챘으면서도 자기도 속은 척 기사를 송고하는 기자들이 문제가 아닐까? 


36쪽에서 언급한 남초현상 분석과 1990년대 초반에 출생한 남자들 중 '김치녀' 등 여성혐오를 표현하는 남자들이 증가한 이유가 연결되는 것 같아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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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쪽


출생 성비는 1980년대 후반 5년간 평균 110.58에서 1990년대 초반 5년간 평균 114.6까지 높아졌다. 경제적 여유와 함께 태아의 성을 감별해 선별 낙태가 가능해진 의학기술의 발달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의료법에 태아 성 감별을 금지하는 조항이 새로 만들어진 것은 1987년 말의 일인데,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 결과 199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이들이 결혼 시기에 접어드는 몇 년 뒤엔 남자들의 배우자 찾기 경쟁은 가장 치열한 국면을 맞게 될 것이다.


72쪽


1995년 인구 10만 명 당 자살자 수를 보면, 연령에 따른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2005년의 자살통계를 보면 고령계층일수록 자살자 수가 매우 높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30대 후반까지는 전체 평균(26.1명)을 밑돈다. 그러나 60대 초반은 48명, 70대 초반은 74.7명으로 고령계층일수록 자살자가 많다. 과거에 견줘서도 크게 늘었다. 이는 성적 비관, 실직 비관 등 언론에 흔히 보도되는 것과 달리 정작 가장 심각한 것은 '노인 자살'임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 가운데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사람은 2005년 현재 30%에 이른다. 1~3%에 불과한 영국, 독일,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미국의 15%, 일본의 19.8%보다도 훨씬 높다. 노르웨이 등 몇몇 북유럽 쪽의 예외는 있지만, 노인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은 것은 대체로 노인복지가 뒤떨어진 나라의 특징이다. 


89쪽


평균값을 나타내는 통계수치 가운데는 불가피하게 물타기가 돼 있는 것도 있다. 통계청의 <가계조사>에서 가구당 평균 사교육비 지출액이 그런 예다. 2006년 가계조사 결과를 보면, 가구당 월평균 사교육비(학원 및 개인교습비)는 14만 원이다. 이 수치를 보고 "유치원생 한 명만 있어도 월 20만원 이상 쓰는데, 14만 원이란 통계를 어떻게 믿느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가구당 사교육비 지출액은 자녀가 있는 가구만이 아니라 자녀가 없는 가구까지 포함해서 평균값을 낸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도시근로자가구 가운데 30%는 자녀가 없는 가구다. 자녀를 둔 가구의 월평균 사교육비 지출액보다 훨씬 적게 잡히는 게 당연하다.ㅏ 


98쪽


우리나라 상장기업들은 등기이사들에게 지급한 보수총액과 등기이사 수를 공시해야 한다. 언론은 등기이사들의 평균 보수가 얼마인지 비교해 보여주곤 한다. 하지만 같은 회사의 등기이사라고 해서 보수가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이른바 오너로서 이사를 맡고 있는 사람의 보수는 매우 많지만, 전문경영인인 이사의 보수는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원의 평균 보수가 높은 기업에 근무하는 임원이라고 해서, 개인별 보수가 더 많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상장사들은 이사 각각의 보수를 공개하는 것을 꺼린다. 최대주주인 이사가 받는 보수를 감추기 위해 평균 수치 뒤에 숨어있는 것이다. 


105쪽


근로소득세 납부자 가운데 소득 상위 10%는 2002년 소득총액의 9.47%를 근로소득세로 냈다. 그 비율이 계속 높아져 2005년에는 10.9%로 높아졌다. 그 다음 상위 10~20% 계층은 2002년 소득의 4.36%를 세금으로 내다가 2005년 4.89%를 냈다. 이 두 계층은 근로소득 대비 세금의 비율이 높아졌다. 하지만 나머지 계층은 소득에서 떼어낸 근로소득세의 비중이 모두 낮아졌다. 근로소득세수가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상위 20% 계층만 소득대비 세금부담이 커졌고, 나머지 계층은 바대로 세금부담이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132쪽


<온천 "효과 봤다" 85%>라는 설문조사 결과는 사람들이 온천을 가고 싶게 만든다. 그런데 그 조사 결과가 온천을 찾은 사람들에게 물어서 나온 것이라면 온천욕의 효과를 보여주는 객관적인 조사결과라고 볼 수 있을까? 온천을 찾은 사람들은 대부분 온천욕의 효과를 경험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173쪽


대졸자들의 취업 연령, 연령대별 임금 구조, 환율의 변동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본과 한국의 대졸 초임만을 딱 잘라 비교하는 것은 제대로 된 비교라 할 수 없다. 사실 '대졸 초임'이 무엇을 뜻하는지 엄밀하게 정의하기조차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는 업종에 따라, 기업 규모에 따라 대졸 초임의 차이가 매우 크다. (중략) 일본에서는 기업 규모간 임금격차가 우리나라보다 아주 작다. 


(전략) 시간당 임금으로 보면 한국은 8035원, 일본은 1만 3222원으로 우리나라 노동자의 임금수준은 일본의 60.8% 수준이다. 


191쪽


기사는 "근로자의 소득은 35% 늘어난 반면, 근로소득세는 74%나 늘었다."며, 근로자의 세 부담이 크게 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계산법은 명백한 통계 왜곡이다. 소득은 물가상승률을 뺀 '실질소득'으로 증가율을 계산하고, 세금은 명목가격으로 증가율을 계산했기 때문이다.


205쪽


2006년 6월에서 7월 사이 현대자동차 노조는 한 달간 파업을 벌였다. 근무 일수만 따지만 파업기간은 21일이다. 현대차는 이 파업으로 "생산손실이 9만 4천대, 파업손실이 1조 3천억원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물론 추산이다. 


회사 쪽의 손실계산법은 간단하다. 파업이 없었다면 생산했을 9만 4천대의 차량 판매가격을 손실로 잡은 것이다. 이는 '수익 손실'이라기보다는 생산차질액, 곧 매출 손실이다. 파업으로 공장이 쉬면 차도 안 만들어지지만 각종 부품도 쓰이지 않아 비용 또한 감소한다. 따라서 매출 손실이 그대로 수익 손실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현대차의 매출 손실에 따른 수익 손실은 얼마나 될까? 현대차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2005년 5.05%였다. 2003년에는 8.9%에 이르기도 했지만 2005년 이후에는 4~5%대에 그쳤다. 따라서 매출액 영업이익률을 5%로 잡더라도 1조 3천억원의 생산 차질에 따른 수익 감소는 최대 780억 원에 그친다. 


현대차는 파업으로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면 파업이 끝난 뒤 잔업, 특근 등을 통해 생산을 늘리곤 해왔다. 잔업, 특근에 따른 추가수당 지출이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생산을 보충하면 손실 규모는 더 줄어들 수도 있다. 


현대차의 파업손실이 정말 1조 3천억원이라면 현대차 경영진은 아주 어리석은 사람들이 된다. 몇 푼 안 되는 임금을 올려주지 않으려고 어마어마한 손실을 자초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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