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up in the air>는 사람들이 비행기를 탈 때의 느낌을 잘 묘사해서 기억에 남는다. 이륙 직후 좌석안전띠 불이 꺼질 때 창 밖을 내다보면 도로를 달리는 차 한대와 나무 한 그루가 다 보이는데 대략 도시의 크기가 감이 잡힌다. 자기가 사는 도시를 개미집처럼 관찰하면서 '아 부질없다. 뭘 그리 지지고 볶고 싸울 필요가 있는지.'라는 느낌은 다들 받아봤으리라.
이 책은 지금은 일본의 손꼽히는 지성인 다치바나 다카시가 우주를 체험한 우주비행사들을 인터뷰한 글들을 정리하여 묶어 낸 책이다. 인류 200만년 역사상 익숙하게 지내온 지구 환경 밖으로 처음 나간 이들의 특이한 체험에 대해 썼다. 1981년도에 게재된 글이지만 그 후 아직도 달에 인류를 보낸 나라도 없는 실정이라 지금 읽어도 흥미진진하다. 미국 정부가 NASA, 군부대, 수십 개의 대학과 기업들의 협력을 얻어 '머큐리'-'제미니'-'아폴로' 계획을 진행해간 궤적을 보니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런 것이고, 이런 일을 맡아서 할 때 정부가 잘 할 수 있구나란 생각도 들었고. 내가 태어나기 2년 전에 발사된 보이저 1호, 보이저2호가 지금도 훌륭히 제 역할을 다하면서 초당 20byte씩의 데이터를 지구로 보내오고 있다는 사실에도 감탄.
우주비행사들이 비행을 준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경력관리와 NASA에서의 다방면의 교육과 훈련, 이해받기 어려운 스트레스의 가정의 위기 등에 관한 내용부터 우주비행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적 문제들, 휴스턴 관제센터의 역할, 우주비행 시도 중에 겪었던 다양한 사고들과 이에 대한 대처들 이런 에피소드들 모두가 내가 어린 시절 한 때 겪었던 우주비행에 대한 동경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그래비티>도 다시 보고 싶고 아직 못본 <아폴로 13호>도 이번 연휴 때 볼 예정이다.
이 책의 중심적인 주제인 우주비행이 이를 겪은 사람들에게 미친 정신적인 영향과 관련해서는 지구 궤도 밖에서 지구를 바라본 경험이 있는지, 우주선을 벗어나 달에서 걸어본 적이 있는지, 혹은 우주유영을 해본 경험이 있는지, 초 단위로 할 일이 정해져있는 촘촘한 스케줄 중에서 아무런 방해없이 그저 우주의 광경을 바라볼 시간을 가졌는지 여부에 따라서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같은 부류끼리는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는 사실도 인상깊었다.
그리고 은퇴한 우주비행사들이 요 몇년간 채산성을 갖춰 OPEC를 긴장시키고 있는 오일샌드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최전선의 분야에서 만들어내는 성과가 나같은 일반인에게 전달될 때까지의 시간적 간격에 대해 가늠해보게 된다. 분야별로 어느 정도 편차는 있겠지만 자기 분야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가늠해보는 지표로 자신의 지식과 일반인의 지식과의 시간적 격차를 사용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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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쪽
(다치바나 다카시) 육안으로 그렇게 지구가 잘 보이나?
(월터 쉬라) "보인다. 놀랄 정도로 잘 보인다. 예를 들어 대양을 항해하고 있는 배의 흔적이 보인다. 중국의 만리장성이 보인다. 어느 쪽도 커다란 폭이 없는데도 잘 보인다. 색채와 명도의 대비가 있으면 아주 작은 것까지 보인다. 베트남 상공에서는 전쟁터에서 서로 쏘고 있는 포의 불빛이 보였다."
257쪽
(유진 서넌) 우주선 안에 갇혀 있는 것과 해치를 열고 밖으로 나가는 것은 완전히 질적으로 다른 체험이다. 우주선 밖으로 나갔을 때 비로소 자신의 눈앞에 우주 전체가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우주라는 무한한 공간의 정중앙에 자신이라는 존재가 던져 있다는 느낌이다. 그 때의 충격에 비하면 지구 궤도를 떠나 달로 향하는 것이나 달 위를 걷는다는 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차이가 있다."
258쪽
(다치바나 다카시) 지구 궤도를 떠나 달로 향할 때는 어떤가?
(유진 서넌) "그 때의 광경은 각별하다. 인간이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지구를 볼 수가 있다. 지구와 멀어짐에 따라 대륙과 대양이 한눈에 조망되었다가, 마침내 지구의 둥근 윤곽이 보이기 시작한다. 세계가 한 눈에 보인다. 전 인류가 내 시야에 속으로 들어와 버린다. 눈 앞의 청색과 백색의 구체 위에서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이 현재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면 왠지 감동적이다. 게다가 지구상에서 시간이 흐르는 모습이 눈으로 보인다. 해 뜨는 지역과 해 지는 지역이 동시에 보이고, 지구가 회전하고 시간이 흘러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그건 정말 신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것이다. 살아 있는 세계가 조금씩 내 눈앞에서 그 생을 전개하고 있다. 나도 그 세계에 속한 일원이지만, 나는 여기에 있고 나머지 모든 세계는 나에게 보여지며 거기에 있다. 나는 사람이면서 눈만은 신의 눈을 가지고 체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구로부터 멀어짐에 따라 지구는 점점 아름다워진다. 그 색깔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평생 잊을 수 없다."
328쪽
(다치바나 다카시) 우주 체험이기 때문에 특별한 건 없었나?
(에드가 미첼) "이런 건 말할 수 있다. 신비적 종교 체험의 특징은 거기에 항상 우주 감각(cosmic sense)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체험을 얻기 위해서는 우주가 최고의 장소이다. 역사상 위대한 정신적 선각자들은 지상에서 우주 감각을 얻을 수 있었다. 이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우주에서는 범속한 사람이라도 우주 감각을 지닐 수 있다. 어찌 되었든 그게 우주이기 때문이다. 우주 공간으로 나가면 허무는 완전한 암흑으로서, 존재는 빛으로서, 즉물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존재와 무, 생명과 죽음, 무한과 유한, 우주의 질서와 조화라는 추상 개념이 추상적으로가 아니라 즉물적으로, 감각적으로 이해된다. 역사상의 현자들이 정신적 지적 수련을 거쳐 겨우 획득할 수 있었던 감각을 우리들은 우주 공간으로 나가는 행위를 통해 쉽게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체험이 개인적 체험에 머무르지 않고 인류에게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체험은 인류 진화사의 전환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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