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전작인 <언더그라운드>는 1995년 옴진리교 신자들이 벌인 도쿄지하철 사린가스 유포 범죄의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글들을 모아 사건 2년 후에 펴낸 논픽션이었다. 이 책은 당시 옴진리교 신도였던 이들을 인터뷰한 글을 모아 펴낸 후속편이다. 추천도 받았고, 분량도 얼마되지 않은데도 몇 달을 묵혀둔 건 '세뇌당한 교인들의 방어논리를 읽느라 시간 허비하는거 아냐?' 라는 선입견때문이었는데 좋은 책을 놓칠 뻔 했다.
틀린 생각과 노이즈는 다르다. 우선 이 둘을 확실히 나누자. 틀린 생각은 일종의 사슬 가닥과 같아서 이어지는 논지를 따라가다가 길을 잘못들었다 싶으면 금방 생각의 출발점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는 떠벌이나 허풍선이라는 평판이 그다지 큰 흠이 되지 않았다. 평생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적으면 백명 많으면 천명 사이인 사람들이 대부분인 시대였으니. 마을사람들이 좋아하고 인정하는 꼭 필요한 재미있는 사람으로 대접받았을 것이다. 한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정보의 양과 해야할 가치판단들이 많지도 않고 그다지 복잡하지도 않았으니 흰소리로 인한 노이즈는 그다지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돌아다니는 정보도 너무 많고, 그 중 상당수는 근거가 없는 엉터리거나 본인 혹은 제3자의 의도로 교묘하게 비틀려 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평범하게만 살아가려해도 삶의 경로와 일상에서 내려야하는 가치판단의 갯수가 예전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게다가 예전처럼 매일매일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일은 점점 줄어든다. 그러니 욕을 하면서도 해야할 가치판단을 위해 날마다 정보의 쓰레기장을 뒤적거리는 일을 그만둘 수도 없다. 바쁜 넝마주이에겐 1cm 단위로 가닥가닥 끊긴 노끈뭉치는 화만 불러올 뿐이다.
어느 사회나 삶의 궁극적 의미를 찾고자 하는 민감한 비위의 사람들이 있다. 명쾌함까지 함께 원한다면 결벽증 수준이라 좀 까다로운. 아무런 지적인 자양분도 담고 있지 않은 맹물이거나 반쯤 상해버린 토설들을 퍼붓는 모양새는 그들에겐 세속적인 삶을 구정물로 가득찬 진창 지옥처럼 보일 법하다.. 면역력이 약한 그네들에게는 도피할 안식처가 필요하고 그 순수하고 집중력 높은 에너지원이 많은 배양액에서 병원균은 빠르게 증식하며 변이를 거듭한다. 그리고 가끔 폭주하는 암세포가 탄생하고. 종교전쟁이나 이단처형, 테러의 형태로 숙주를 죽인다.
민감하지 않는 나는 별탈 없이 뒹굴거리며 살고 있다. 내가 잡음을 크게 신경쓰지 않지만 괜찮다는 건 물론 아니다. 나도 잽을 얻어맞듯 그런 잡음의 영향을 받는다. 그런 노이즈들이 그렇지 않아도 점점 이해하기 복잡해지는 세상을 보는 렌즈의 서리는 김처럼 보는 걸 방해하니.
이 책을 읽고서 왜 현/대/사/회/에/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침묵해야하는지 그 의미를 깨닫게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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