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아는 변호사님에게서 선물해주셨습니다. 그 변호사님께서는 형사사건 범죄자의 심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은 책들을 보신다는데 이 책을 추천해주시네요. 원제는 <A Mother's Reckoning:Living in the aftermath of Tradegy>인데 'reckoning'은 '추정(rebuttable of presumption)'이라고 해석해야겠죠?
이 책은 1999년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13명의 사망자와 24명의 부상자를 냈던 총격 사건의 가해자 두 명 중 한 사람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였던 수 클리볼드씨가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오랜 세월 고민했던 내용들을 담았더군요. 멀쩡한 부모(중산층의 자녀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가 어떻게 이런 계획적인 총격범죄를 전혀 몰랐을 수 있는지라는 스스로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한 책이지요. 아버지 톰과 어머니 수, 그리고 딜런이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몬>을 감탄하며 몰입해서 봤었는데 그로부터 얼마 후 벌어진 사건으로 인해 평생 또 하나의 라쇼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었습니다.
선정적이었던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컬럼바인>과 자극적인 면 없이 담담하게 총격사건 자체를 화면에 담았던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장님 코끼리만지기의 인도 우화에서 따온 제목이라네요.)>을 봤었죠. 특히 <엘리펀트>는 올해 본 영화라서 기억이 생생했었기 법원에서 20년간 비공개 결정을 했던 총격사건의 영상을 실제로 봤던 가족들의 심정이 어땠을지 조금은 더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울증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볼 수 있게 해주는 부분도 인상깊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병으로 돌아가셨던 제 아버지도 말년에 우울증을 앓으셨던 것 같은데 저는 전혀 몰랐거든요.
미국의 약간은 보수적인 교외에 사는 중산층 백인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배려와 품위(특히 수가 일했던 커뮤니티 칼리지의 총장님이 보여주신 절제된 배려는 리더로서 모범적인 처신이었습니다.) 1부 <상상도 하지 못한 일> 부분은 자신의 경험과 감정들 위주로 서술하고 있어서 매우 좋았지만 2부 <이해를 통 해> 부분은 아무래도 딜런이 왜 그렇게 행동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수의 해석이 들어가다보니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결국 이 책은 딜런의 어머니 수의 입장에서 쓰여졌으니까요.
예를 들어 남편 톰의 류머티스 관절염 치료(두 차례의 수술)로 인한 의료비용 압박, 정규직이 아닌 기금 직원으로 일하면서 감소한 급여 등 재정적인 압박이 어느 정도 심했는지에 대해서 밝히지 않고 있다보니 딜런이 가계의 어려움에 대한 압박감을 어느 정도로 느꼈는지 모호했습니다. 그리고 학교의 전산시스템 업무를 담당하는 학생이 학생들의 개인 사물함 비번을 유출한 행위는 충분히 5일 정학 사유가 될 것 같은데 이 부분을 가혹하다고 보는 수의 시각도 동의하기 어려웠고요. 딜런의 정신적인 문제를 임상 진단없이 사후에 '의사결정기능장애'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지도요. 그리고 수는 딜런의 성적 정체성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던데 이 부분도 흐릿한 부분일 수도...
이 책의 서두에 해설을 쓴 앤드루 솔로몬의 <한낮의 우울>이라는 책을 예전에 누가 추천해준 적이 있는데 기회가 되면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슬픔을 견디기 위해, 또 딜런의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펼쳐지고 있었는지를 헤아리기 위해, 딜런을 알았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지만, 그러다가 그 사람들이 법정에서 증언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법적 의미가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런데 법적인 의미가 없는 일이 없었다.)
양말 한 짝을 신은 다음 한 시간 동안 허공을 보고 있다가 나머지 한 짝을 마저 신었다. 옷을 다 입는 데 거의 네 시간이 걸렸다. 다른 날 오후에는 친구가 전화를 걸어 어떻냐고 물었다. "아무 것도 안 해. 그런데 왜 이렇게 피곤하지?" 나는 정말 당혹스럽다는 듯이 대답했다. 친구는 자기도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어 이렇게 말해주었다. "아무 것도 안하는 게 아니야. 슬퍼하고 있잖아. 그거 아주 힘든 일이야."
내가 지역 대학에서 일할 때 학생 한 명이 장애인으로 살면서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인지 말해준 적이 있다.
"누구든 장애를 가장 먼저 봐요. 그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사람이기 이전에 장애인인 거예요."
그 때에는 그 말에 담긴 통찰이 내 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고마움을 느꼈다. 그런데 콜럼바인 이후에야, 그 학생이 한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영원히 살인자를 키운 엄마로 비춰질 것이며 어느 누구도, 나 자신조차도, 나를 다른 존재 로 보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에서 흔히 쓰이는 '정신질환', '정신건강'이라는 말 대신에 '뇌질환','뇌건강'이라는 용어를 쓴다. (중략) 리치먼 박사는 나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정신'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죠. 그래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불안, 오명이 덧붙여집니다. 하지만 뇌에는 영상으로 보고 측정하고 수량화하고 이해할 수 있는 물리적 실제적 증거가 있습니다. 뇌건강과 뇌질환이라는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세계로 이해의 범위를 옮겨가야 합니다."
토머스 조이너 박사는 심리학자이자 아버지를 자살로 잃은 사람으로서, 꼼꼼한 자료 조사는 물론 공감과 개인적 관점이 담긴 아름다운 책을 쓴다. 세 개의 원이 겹처진 벤다이어그램으로 표현되는 조이너 박사의 자살 이론이 이 분야를 새로이 정의했다.
조이너 박사는 사람이 두 가지 심리적 상태를 꽤 오랫동안 겪으며 살았을 때 자살로 죽고자 하는 욕망이 생겨난다고 한다. 첫째는 좌절된 소속감("나는 혼자야."), 둘째는 스스로를 짐이 되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내가 없으면 세상이 더 나아질 거야.")이다.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보존 본능을 넘어서는 단계에 들어선다면("나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아.)위험이 임박했으며 자살을 저지르르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죽고자 하는 욕망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심리 상태에서 나온다. 자살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세 번째 요인에서 나온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는 막상 만나면 불쾌할 때가 많다. 공격적이고 호전적이고 무례하고 화를 잘 내고 적대적이고 게으르고 짜증을 내고 솔직하지 않고 위생 상태도 썩 좋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까다롭고 다른 사람을 밀어내려고 하는 아이들이 누구보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성향이 도와달라는 신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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