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미시마 유키오/이수미 역] 부도덕 교육강좌(1959)

독서일기/에세이(외국)

by 태즈매니언 2017. 5. 15. 13:33

본문


미시마 유키오의 <부도덕 교육강좌>는 그가 34세이던 시절인 1958년에 여성주간지에 연재되었던 67편의 짤막한 글들을 모은 책입니다. 무려 근 60년..거의 한 갑자 전에 쓴 글들인데도 지금도 신선하게 느껴지는 꼭지들이 많이 있네요.

악을 모르고서는 선을 행할 수 없는 것처럼 사회 통념상의 '도덕'에 대해서 반대되는 주장을 던져보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악에 단련될 기회를 주면서 자기 나름의 도덕관을 고민해보도록 돕는 가벼운 필치의 글들입니다. (예를 들면 제목이 '거짓말을 많이 하라', '마음껏 참견하라', '약속을 지키지마라' 이런 식이죠.)

제가 읽었던 <가면의 고백>과 <금각사>와 같이 진지하고 탐미적인 글을 쓴 사람하고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스타일이 다르지만 문장력은 역시 좋습니다.

아버지도 고위 관료에 학습원 고교와 도쿄대 법대를 나와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해서 대장성 금융국에서도 일하면서(1년 뿐이지만) 당시 통념적인 도덕관념으로 여겨지던 것들에 대해서 얼마나 진저리가 났었는지 이런 책을 다 썼나 싶더군요. 이렇게 남들이 으레 당연히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정반대로 볼 수 있는 시각으로 무게잡지 않은 경쾌한 글을 줄줄줄 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죠.

연재한 첫 꼭지의 제목이 '모르는 남자와도 술집에 갈 수 있다'라니 1958년 당시에 얼마나 흥행했을지 짐작이 됩니다.

아래 인용구 중에서 학교의 선생님에 대한 표현, 아첨의 비결에 대해서는 저도 터득하고 있긴 했는데 '죽은 뒤에 험담하라'의 의미와 '독을 품은 말'에 나오는 소설을 읽는 즐거움에 대한 해석,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통해 독을 품은 말이 자기의 본모습을 어떻게 보여주는지에 대한 생각(독을 품은 말에 반응하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너무 많이 보여주는 행동이니 자제합시다.), '매사에 투덜거려라'에서 불평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자기 힘의 위력을 가늠해볼 수 있다는 조언 등은 인상깊어서 좀 길게 인용해 봅니다.

----------------------

21쪽

선생이라는 종족은 여러분이 만나는 어른 중에서도 가장 만만한 어른이다.

74쪽

예상 외의 장소에서 나타나는 누드만큼 날카로운 에로티시즘은 없다.

140쪽

남자든 여자든 한 번이라도 자신의 육체적 매력을 알게된 사람은 바로 그날로부터 미묘한 '정신적 매음'을 시작한다.

187쪽

연전연승하는 장군을 향해 "당신은 참으로 훌륭한 전술가이군요"라고 칭찬해서는 안 된다. 남들이 칭찬하지 않는 부분을 노려 "장군, 당신의 수염은 참으로 아름답군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첨의 비결이다.

220쪽

우리는 죽은 사람에 대한 일은 되도록 빨리 잊고 싶어 한다. 미워하고 싫어하던 사람일수록 빨리 잊고 싶어지는 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칭찬하는 것이 제일이다. 그러니까 죽은 이에 대한 칭찬은 왠지 냉혹하고 비인간적이다. 이에 반해 죽은 사람에 대한 험담은 확실히 인간적이다. 험담은 죽은 사람의 추억을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 언제까지나 묻어두게 만들기 때문이다.

254쪽

무턱대고 남에게 자신의 약점을 노출시키는 인간을 나는 주저없이 '무례한 놈'이라 부르겠다. 그것은 일종의 사회적 무례이다.

349쪽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란 개인의 신상에 아무 해가 없다는 약속 아래 마음껏 말의 독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즐거움이라고도 할 수 있다.

350쪽

이아고가 고자질한 데스데모나의 부정은 사실이 아니며 존재하지도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아고의 고자질에 사용된 독을 품은 말은 데스데모나가 아니라 고결한 오셀로의 인간적이고도 약한 내면과 실태를 정확히 도려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361쪽

힘을 가진 인간도 가끔 싸움을 해보지 않고서는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듯이 불평해보지 않고서는 자기 힘의 위력을 확실히 알 수 없다. (중략) 그러나 불평하는 데에는 적당한 시기가 있는 법이니, 이쪽에 절대적인 승산이 있을 때를 노리는 것이 좋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