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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동]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2016)

독서일기/중앙아시아

by 태즈매니언 2017. 8. 13.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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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좋은 책들은 많이 추천받는데 읽는 사람의 기초체력이 되는 배경지식이 너무 딸리고 그나마 있는 지식도 업데이트가 안된 걸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중앙유라시아 지역같은 경우는 완전 구멍이었죠. 추천받을 때 이 책은 옆에 두고 필요하면 수시로 찾아보는 책이라고 들었는데 맞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국내 유라시아사의 대가 김호동 교수님께서 쓰셔서 더 감탄했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지역을 다룬 책들도 비슷한 구조에 수준이라면 시리즈 전질을 갖춰놓고 있을만하다고 생각되네요.

제가 고교시절때 세계사 교과서와 세계지리, 역사부도와 지리부도가 각각 별도의 책으로 되어 있었죠. 이 책은 두 번째 사진과 같이 이 네 종류의 책을 한 권으로 모은 듯한 책입니다. 덕분에 까치글방 스타일의 글자만 빽빽한 책들보다 가독성도 훨씬 높구요.

 

읽으면서 제 기존의 중앙유라시아 지역에 대한 제 지식이 중화쪽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한반도 중심의 동아시아에 치우쳐 있어 시...야가 좁았다는 사실을 여러 번 깨달았습니다. 나름 정주문명과 대비되는 유목문명의 시각에서 본다고 생각했었는데 개뿔... --;

 

깨알같은 지식들도 많이 얻었습니다. 예를 들면 하서회랑과 연결되는 육지의 섬 오아시스에서 무역상인으로 활약했던 소고드인 중 중국에서 활동한 이들은 타슈켄트 출신이 석(石)씨(무협소설에 많이 나오는 부자의 상징 진나라 석숭과 관계가 있을까요?), 사마르칸드 출신은 강(姜)씨, 부하라 출신은 안(安)라는 성을 붙였다고 하네요. 안녹산의 경우 원래 사마르칸드 출신의 록산(Rokhshan:광휘)이었으나 어머니가 부하라인에게 재가해서 안씨가 되었다고 하고요. 안녹산의 세력이 커진 것도 돌궐제국 붕괴 후 중국 북변으로 내려온 소그드인들을 편입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그냥 책 자체가 이런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744년 건국하여 초원에 세운 정주문명이었던 위구르 제국의 특징을 통해서 왜 칭기스 칸이 위구르인들을 중용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고, 돌궐제국의 흥기와 부흥을 보면서 왜 칭기스칸의 부하들 중에 인도유럽계인 투르크계가 많았는지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은둔의 나라였던 우리나라 지도 ‘혼일강리역대국지도’에 왜 갑자기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까지 등장하게 되었는지 등등 꿀잼 지식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몽골제국 이후에 대한 부분은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몽골제국 이후에도 17세기까지 중앙유라시아의 유목민족들은 계속 상당한 세력을 유지했더군요. 물론 그 이후로 러시아의 서진과 청 제국의 동진으로 결국 중앙유라시아 유목문명의 독자적인 정치력은 소멸되지만요. 1689년 네르친스크에서 벌어진 청과 러시아 사이의 협상에서 통역을 담당한 이들이 예수회 신부였고, 때문에 조약문의 정본이 라틴어로 쓰여졌다는 사실도 재미있었습니다.

 

중앙아시아 유목문명의 독자성을 마지막으로 끝내신 분이 또 위대한 지도자 동지였죠. 민족문제 인민위원회 내부에 무슬림 위원회 분과를 두고 동요하던 중앙아시아 무슬림 지도자들을 적군쪽으로 포섭하셨고, 나중엔 대대적인 숙청과 이주정책으로 중앙아시아에서 무슬림 민족주의를 혹독하게 탄압하신 그 분. 소련 해체 후 중앙아시아에 생겨난 5개의 ~스탄 국가들은 유목문명이 아닌 스탈린의 유산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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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쪽

 

팍스 몽골리카와 대여행의 시대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가장 대표적인 저술은 바로 <동방견문록>이다. 이는 일본에서 통용되던 제목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전달된 것으로 이를 단지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세계의 서술(Divisament dou Monde)’라는 원제목이 웅변하듯이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유럽 이외의 세계 전체에 대한 체계적인 서술이고, 마르코 폴로가 자신의 여행을 통해 얻은 견문을 토대로 다른 많은 자료와 정보를 참조하여 찬술한 세계지리지이자 박물지이다.

 

190쪽

 

티베트 불교는 흔히 ‘라마교’라 불리기도 하지만 정확한 명칭은 아니다. 라마는 인도에서 정신적 스승을 일컫는 구루(guru)를 티베트어로 옮긴 말에 불과하며, 티베트 불교는 라마를 숭배하는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략)
소남 갸초가 알탄 칸을 쿠빌라이의 전생(轉生)으로 인정하자 알탄 칸은 그에게 ‘달라이 라마’의 칭호를 부여했다. ‘달라이’는 몽골어로 ‘바다’를 뜻하기 때문에 이 칭호는 ‘사해와 같이 넓은 지혜를 지닌 스승’으로 볼 수 있다.

 

214쪽

 

만주 황실은 몽골 왕공들과의 통혼을 통해 그들에게 제국의 지배집단의 일원이라는 의식을 심어주었다. 예를 들어 홍타이지는 몽골 호르친부의 여자와 혼인했고, 거기서 낳은 아들이 순치제가 되었다. 청과 몽골의 수장은 내몽골 초원에서 정기적으로 만나 가축을 도살하고 천지에 서약을 했으며, 함께 음주를 하고 사냥을 하며 우의를 다졌다.
(조선도 청이 산해관을 넘기 전에 입조했으니 소현세자가 잘했더라면 청나라 덕 좀 봤을텐데 그랬더라면 근대화가 더 힘들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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