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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부루마/최은봉 역] 근대 일본(2004)

독서일기/일본

by 태즈매니언 2018. 1. 1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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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venting Japan 1853-1964라. 멋들어진 제목이다. 네이밍을 보면 아직 못 읽어본 그렉 브라진스키의 <대한민국 만들기 1945-1987>의 원조가 이 책이구나 싶다.

네덜란드 출신 저널리스트이자 역사학자 이언 부루마(하필 성이 ㅎㅎ)는 180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분량으로 1853년 윌리엄 페리 제독이 에도만에 나타났을 때부터 최초로 아시아에서 개최된 올림픽인 1964년의 도쿄 하계 올림픽까지를 다루고 있다. 여느 학자들와 달리 왜 '1955년 체제'의 설립을 일본 전후 체제의 성립으로 보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다.

내 경우엔 박훈 교수님 책과 <패배를 껴안고>, <일본의 재구성>을 봤던 게 큰 도움이 되었지만 중간중간 등장하는 사람 이들과 사건을 나무위키를 찾아가며 보면 큰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근대 일본과 전후체제의 성립에 대해서 큰 흐름을 이해하기는 충분하다. 

특히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분위기에서 코쿠타이(국체)라는 희한한 가시관을 쓰게 되는 과정을 간결하게 잘 묘사했더라. 경제대공황이 하필 그 때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1928년 만주사변 당시의 방관적인 태도와 1932년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의 암살(군인들이 총리에게 '문답불용, 발사' 라니 --;)까지 이르게 된 경위를 보면 일본의 패전 후에 매카서가 히로히토 천황의 폐위를 막아준 일은 일본의 좌파와 우파 모두를 뒤틀리게 한 결정이 아니었나 싶다. 

한국인들은 1991년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전비를 부담하고도 비웃음을 샀던 일본의 정치적 무능력을 비웃었지만, 그러한 치욕을 몸소 목도한 일본인들의 심정이 어땠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지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보통국가화'에 대해 민족주의적인 편견을 접고 객관적으로 이해해줄 수 있지 않을까?

종전 직후 스가모 교도소에서 기시 노부스케와 암흑가에서 큰 돈을 모은 우익 폭력배 사사가와 료이치와의 만남과 후원관계, 10년 후 기시의 총리 집권까지의 내막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때 재미있게 봤던 이케가미 료이치의 만화 <생츄어리(해적판 제목은 '빛과 그림자)>의 모티브가 이 둘의 관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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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쪽

과두정치의 지배자들이 죽거나 나이먹어 퇴장한 후, 일본 정치를 통괄할 사람이 없게 되자 집단 간의 끊임없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특히 다이쇼 천황 치하에서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히로히토 하에서 천황의 의지는 난잡한 일이 벌어지는 것을 가려주는 장막 이상은 아니었다.

106쪽

일본 장군들은 대량 강간이 중국의 저항을 격화시키리라는 것을 재빨리 알아챘다. 그 흐름을 막기 위해 일본 전쟁대신은 조선인, 중국인, 동남아시아인, 심지어 유럽인들을 방대한 지역의 군대 매음굴, '위안소'에서 매춘부로 일하도록 모집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대협 류의 민족주의 시각은 과도할 정도로 감정과잉이다. 한반도의 소녀를 성적으로 짓밟고자 한게 아니라 이런 판단에 따랐을 뿐이라고 본다.)

145쪽

1882년 육군과 해군의 조칙에서는 제국의 군대가 아닌 천황에게 그들의 충성을 다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것은 전쟁 문제를 의회정치에서 떼내어 보다 고양된 그러나 책임을 지지 않는 천황 차원으로 옮기는 역할을 하였다. 이제부터는 미국이 일본의 군사 문제를 관할할 예정이었으므로 이 책임 문책을 당하지 않는 왕좌도 곧 워싱턴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이는 일본 국내외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가져다주기는 했지만, 정작 필요한 곳에서 일본의 민주주의를 강호하는 데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

147쪽

일본인들이 많은 범죄에 책임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고쿠타이'와 그들의 신성한 지도자인 천황을 위해 저지른 거시었다. 모든 육군과 해군들은 "상관이 내리는 명령을 짐(천황)이 내리는 명령으로 생각하라."는 천황의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연합군 총사령부는 천황은 무죄이며 재판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일본이 도쿄재판에서 배운 것은 거짓과 정치적 손상을 가져오는 왜곡이었다.

174쪽

1991년 걸프전은 부분적으로는 일본도 의존하고 있는 석유공급원을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해 전개한 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겠으나 한 가지 사항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일본인들은 그저 바라만 보았을 뿐 어떻게 보면 자기들과 직접 연관된 위기였는데도 전혀 도울 수가 없었다. 일본의 역할이라면 오로지 미국과 연합군에게 돈을 대는 것이었으나 그것도 너무 뒤늦게 해서 고맙다는 말도 못 듣고 말았다. 이때 모욕감을 느낀 것은 단지 일본의 민족주의자들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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