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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 닌/하재홍 역] 전쟁의 슬픔(1991)

독서일기/기타국가소설

by 태즈매니언 2020. 3. 8.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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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소설가 이화경님께서 <열애를 읽다>에서 추천해주신 소설. <전쟁의 슬픔>의 저자 바오 닌은 하노이 출신으로 비엣남 전쟁에 참전했던 귀환병 출신 작가다.

 

비엣남 전쟁에 대해서 미국이나 한국인 참전자가 쓴 소설들은 몇 작품 봤는데 정작 비엣남 월맹군이 쓴 이야기는 처음 봤다.

 

1991년에 출판되었지만 검열때문에 <전쟁의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나오지도 못했고, 비엣남에서도 혹독한 비판을 받았으며, 2006년에야 원래의 제목으로 재출간이 되었더라. 전후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는 이런 작품이 인정받긴 쉽지 않을만 하다 싶었다.

 

우선 북부 베트남 병사들이 이념으로 불타는 무명의 영웅들이 아닌 상황에 따라 엉겁결에 끌어온 십대 후반 이십대 초반의 취약한 영혼들이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하지만 가장 큰 미덕은 전쟁이 우리의 일상적인 삶과 정신을 얼마나 철저하게 파괴하는지, 심지어 가장 순수했던 이들을 어디까지 타락시킬 수 있는지를 베트남 전쟁의 초기부터 마지막 전투까지 참전했던 귀환한 고참병의 시선을 통해 안온한 평화를 누리고 있는 나에게 일깨워준다는 점이었다.

 

이 소설 중반까지의 구성은 횡성수설 두서가 없고, 다음 페이지가 맞나 확인해볼 정도로 이야기도 들쭉날쭉 시간과 공간을 널뛴다. 하지만 처절한 전쟁, 그리고 유해발굴의 현장을 경험한 사람이 깔끔한 구성의 소설을 쓰길 기대하는게 맞을까?

 

마지막 30페이지를 남겨놓고 드러나는... 전쟁터로 나가던 열일곱 살의 끼엔과 그의 소꿉친구이자 연인 프엉이 겪었던, 전쟁터에서는 지극히 일상적이면서 비극적인 사건이 바로 ‘전쟁의 슬픔’이구나 싶었다.

 

사람들이 죽고 사지를 잃는 것만이 비극이 아니었다. 희망의 완전한 상실 역시 못지 않은 전쟁의 슬픔이란 사실을 이 소설을 통해 깨달았다. 단지 백 명의 신병 중에 살아온 한 명의 운 좋은 귀환병이었다고 행운에 감사하라는 말따위를 하면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

 

엊그제 읽었던 샨사의 <바둑두는 여자>가 탐미적이었다면, <전쟁의 슬픔>은 몽환적이면서도 지극히 사실적이다.

 

전차의 무한궤도 톱니 사이에 낀 시체 살점들에서 나는 썩은 내의 고약함, 얼굴 바로 앞에 총구를 대고 탄창의 절반이 빌 때까지 난사했는데도 팔꿈치로 바닥을 짚고 일어나고자 했던 여자, 내가 휴가로 찾았던 사이공 탄손낫 공항에서 1975년 4월 30일 벌어졌던 마지막 전투의 풍경들은 스베틀라나의 <아연 소년들>에서 총알을 맞고 뇌의 반절이 날아간 상태로 오백 미터를 전력질주했던 아프가니스탄 소련 병사의 이야기를 읽을 때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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