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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밥을 짓듯 건축하다(2019)

독서일기/도시토목건축

by 태즈매니언 2020. 5. 3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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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 취득 당시 전체 건축사 중 2%에 불과했던 여성 건축사로 1996년 개업하셔서 25년 동안 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로 계신 분이 쓴 책이라 흥미가 들었다.

 

처음 60페이지쯤 읽고는 던져버릴 뻔 했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서울 강동구 민주당 예비후보로 나설 생각으로 급조한 정치지망생의 홍보용 책자 느낌이 나더라. 교열이 아예 없었는지 오탈자도 수시로 눈에 띄었다.

 

그래도 건설회사에 다니다가 서울지하철공사 건축직으로 이직, 사직 후 연년생 자녀의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기간을 거쳐 건축사 시험에 합격하신 후의 이야기들은 인상깊었다.

 

건축계의 소수자지만 직원들과 함께 본인의 업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는 자부심으로 전해주는 건축사업계의 뒷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건축설계 현상공모의 현실, 개업변호사의 외근사무장같은 '이사'가 횡행하는 소규모 감리 시장, 계약관계가 종료된 건축사의 설계도면 도용 등은 젊은 개업 변호사들이 겪는다는 일들과 어쩜 그리 비슷한지.

 

건축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많이 알았다. 지자체의 업무대행건축사, 건축물 유지관리자(정기,수시점검 대행), 옥외광고물 위탁관리업도 할 수 있구나.

 

개업건축사와 개업변호사의 업무특성과 시장현황이 상당히 비슷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이렇게까지 비슷할 줄이야. 그나마 변호사시장은 변호사가 관여할 수 있는 업역들이 별도의 전문자격사들로 분화가 되었고, 로스쿨제도를 통한 배출인원 증가, 합동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의 증가, 국선사건 등 소송구조제도의 정비 등 타분야에 대해 낙후된 상태긴 하지만 그나마 나아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건축사협회는 훨씬 심각하구나.

 

변호사업계도 판사와 검사, 그리고 실제 법원에서 소송대리인과 변호인의 업무를 하는 송무변호사를 본류로 인정하긴 하지만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서 돈을 벌거나 공익에 기여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부러워하는데...

국토계획법과 건축법 기타 엄청나게 많은 법들을 잘 알아야 하는 사람들이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왜 이리 무관심한지. 이렇게 건축사협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보면 결국 설계업무 외에 나머지 분야들에서 다른 전문자격사들이 생겨나서 각자 해자를 치지 않을까?

 

아무리 '어느 학교를 나왔네.', '합격하기 힘들다고 소문난 국가공인 자격증이 있네.'라고 떠들어봤자 모래알 같은 자영업자들은 시장의 풍랑에 쓸려나가기 마련인데. 다들 개인택시운수사업자 노조를 보고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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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쪽

 

소규모 감리와 관련하여 우선 내가 겪은 세 가지 수주자의 유형이 있다.

첫째, 이사들을 많이 유치하고 있는 건축사사무소로, 그들은 스스로 수주해 관련된 타 건축사 또는 같은 사무실 건축사에게 필요한 도장을 받아 이사가 건수별로 책임을 진다. 좋은 의미의 책임은 상생이 되어 상부상조가 될 수 있으나, 이사의 지휘 아래 해서는 안 될 내용까지 다음 계약을 위해 건축주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며 수용해 버린다. 이들은 도장과 관련되어 함께하는 건축사께 법적인 책임만 안길 뿐, 도장만 받으면 끝이다.

둘째, 실제로 근무하지 않지만 서류로는 올라와 있는 건축사,

셋재, 본인의 자격증과 현재 하는 일이 전혀 다르며 면허를 대여한 경우

 

154쪽

 

현장대리인이나 현장관리인은 신고서류에 적시된 사람과 현장에 있는 사람이 동일해야 함에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공공어린이집 감리도 그러했고, 소규모 감리도 이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185쪽

 

옥상간판은 구조계산서가 없는 곳이 99%이다. 오래된 광고물은 신규허가를 몇 년에 받았는지도 모르는 광고주들이 대부분이며, 철골재는 구조적인 내력보다는 시공성을 생각해 보강재인 가새를 일하기 좋게 잘라 버린 곳이 많다.

간판은 내구연한을 고려하여 사용 재료, 무게의 한도, 주벽과 관계되는 연결 철물의 길이, 개수, 최대 허용 크기 등을 결정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외광고물 대부분은 건물의 구조, 마감재 등과 관련 없이 연결철물로 앵커를 박아 매다는 방식이다. 광고주들은 다른 간판보다 자신의 것이 눈에 더 잘 띄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간판을 돌출시키려 고민할 뿐이다.

 

209쪽

 

법원은 매년 감정인을 뽑는다. 나는 몇 년간 법원감정인으로 선발되었지만 일이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법운 감정업무 역시 전문으로 하는 건축사들이 포진해 있었다. 대부분의 일이 그들 건축사 사무소에 몰리고 있었다.

내가 아는 C 건축사는 모두 외주로만 돌려 6:4로 감정비를 나누어 갖는다며 자랑하였다.

(중략)

법원 감정 쪽에 경험이 많은 한 지인은 이렇게 조언을 해주었다. "그렇게 일해선 푼돈밖에 못만진다. 이쪽도 다 정보로 움직이는 건데, 원고 쪽 일을 받았으면 잘해서 피고 쪽 일을 같이해야 돈을 벌지."

그건 직무윤리 위반이 아니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올 뻔했지만, 많은 이들이 이미 그렇게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에 자괴감마저 들었다. 그러나 나는 처음 현장에서 피고의 부탁으로 현장 조사 시간이 바뀐 것 때문에 문자를 한 적은 있지만 그 외엔 언급하지 않았다.

 

228쪽

 

(심의위원회에서) 항상 한두 사람은 사인만 하고 의견서에 내용을 미리 적고는 회의가 끝나기 전에 가 버리곤 한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착석 후 10분이 안되어 가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시간이 없는 위원들은 다음 기회에 참석하면 좋겠다.

 

243쪽

 

그린 파킹(친환경주차)은 설익은 정책이다.

첫째, 담장을 허물고 바닥포장비로 한 세대당 기백만 원씩 세금으로 지원했던 예산 낭비 정책이다. 둘째는 프라이버시 침해다. 마당이라는 옥외공간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가가호호 도로경계선을 넘나드는 쓰레기의 문제다. 담장 밖 쓰레기와 마당쓰레기가 모두 섞여 난장판이다. 넷째, 도로를 걸쳐 마당에 비정형화 비열주차하는 상황이므로 도로 효율은 저하되었다. 나는 위와 같은 이유로 그린파킹에 참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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