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주택 짓기에 대한 열망이 최근 사그라 들었다. 투 자관점을 제외하더라도 CBD 도보권에 대중교통 접근성, 관리사무소의 서비스, 1층에서 교촌, BHC, 푸라닭이 혈투를 벌이는 주상복합의 편리함, 도심지 고층조망을 포기하기가 좀. 역시 신축아파트가 좋다.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대해 의견들이 많다. 지금 당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아니지만, 앞으로 건축하는 모든 도심 다세대주택과 아파트를 무조건 라멘조로 짓도록 의무화하면 어떨까? 라멘조 건축시 용적율을 50% 올려주거나.
한국의 공동주택들은 대부분 건설기간과 공사비를 절감할 수 있도록 벽체가 구조의 역할을 겸하는 벽식구조인데, 그러다보니 내력벽을 헐 수 없어 리모델링을 통해 공간을 재배치하기 어렵다.
그래서 좀 더 좋은 주거공간을 찾는 사람들은 살던 집을 고쳐서 계속 지내기보다 신축 아파트를 찾게 된다. 지금 인기있는 신축도 배관이 낡아가고 거주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뀌면 이 문제는 반복된다.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배관이 매립되지 않아 교체가 쉽고, 기둥과 보로 이루어져서 내부공간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장수명주택을 권장(세종시에 시범단지 동도 있다.)하고 있긴 한데 더 파격적인 인센티브나 의무화가 있어야 바뀌지 않을까?
신축에 입주하는 소비자입장에서는 층간소음이 줄어드는 것말고는 라멘조 건설방식의 장점을 체감하기 어렵다. 공사비는 많이 들었는데 다른 아파트에는 없는 기둥들이 보기싫게 자리잡고 있을테니.
<집의 모양>은 건축/디자인/미식/여행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쓴 일한 대만의 잡지 편집자가 17년 동안 살았던 29평 아파트를 5개월 동안 계획해서 7개월 동안 철거 및 공사를 마치고 입주한 1년 동안의 리모델링 기록이다.
한국에도 예이란씨처럼 자기 취향에 맞게 아파트를 리모델링하고 싶은 사람들이 충분히 있을거다. 하지만 내력벽을 건드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리모델링의 한계는 분명하다. 이런 제약이 없이 빈 도화지같은 집을 세심한 고민을 통해 바꾸어나가는 과정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저자 예이란씨는 '집은 삶을 담은 그릇'이라고 거듭 말한다. 마음에 드는 공간은 그대로 점유하면서 그동안의 삶을 담았던 그릇을 차분히 돌아보고 새로운 그릇으로 옮기는 경험을 권장하는 사회가 되어야 소위 도시 내의 마을공동체라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살아온 공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내부만을 바꿀 때 그동안 그 공간에서 살아가면서 쌓았던 체험들이 반영되어 내게 딱 맞는 집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높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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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쪽
모든 스타일은 형식이나 겉모습이 현지의 환경과 정취, 날씨, 역사, 문화, 생활방식의 정수가 녹아들었거나 발효되어 오랜 시간을 두고 아름다운 흐름으로 천천히 생성되고 진화되어 온 것이다.
(중략)
공중누각처럼 실제 생활의 필요에 녹아들지 못하고 개인의 취향이나 기억, 숨결, 습관이 결여되어 집과 주인 사이에 연결과 공감이 없다면 그 집에서는 진정한 안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볼안하고 싫증이 나 집에 대한 관심이 아예 식어버릴 수도 있다.
225쪽
리징민 디자이너와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제안한 내용은 대부분 저와 남편이 이 집에서 17년 동안 살면서 느꼈던 점들이에요. 오랜 산 만큼 이 집의 구석구석 모르는 게 없으니까요.
이를테면 매년 11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집의 어느 모퉁이에 햇볕이 많이 드는지, 어디가 겨울에 가장 추운지 하는 것들 말이죠. 하지만 거실이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 서재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저나 제 남편이나 가능하면 입 밖으로 내지 않았어요.
(중략)
오랜 경험에 비춰보건대 좋은 디자이너와 함께 일하게 됐을 때 디자이너는 제 모든 요구에 디자인이라는 방법으로 응답합니다. 단순히 아름다운 디자인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디자인을 싫어하는지, 보통 어떤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해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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