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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오 겐/남미혜 역] 가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법으로(2018)

독서일기/경영(외국)

by 태즈매니언 2020. 7. 28.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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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아주 가끔 추천하시기에 더 유심히 보게되는 정곤님덕분에 알게되었다. 일본 발뮤다 주식회사의 창업자 테라오 겐이 일 년 동안 직접 써내려간 자서전 느낌의 에세이.

 

발뮤다의 독특한 제품들이 유명해지면서 온갖 인터뷰들을 주구장창했을터라 부모님에 대한 회상부터 시작해서 유년시절과 음악을 하던 시절에 대한 내용이 절반 이상이다.

 

28세에 사업을 시작하기 전 부분까지 읽었을 때는 정곤님께서 왜 추천하셨나 의아했다. 뭐 그리 대단한 도전도 깨닮음도 아니라고 느꼈다. 당연히 나같은 사람과는 비교도 못할만큼 치열한 도전이었지만 세상에 28세의 테라오 겐 이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참 많다고 생각하니까. 헤이세이 대불황이라고 불리던 시절에도 프리터로 충분히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일본의 풍요로움이 가장 기억에 남을 정도였다.

 

하지만 록 밴드로도 해볼만큼 해본 테라오 겐이 '발뮤다 디자인'을 시작하면서 시도한 노력들은 책으로 훌훌 읽는 나까지 질릴 정도였다.

 

물론 나는 테라오 겐처럼 살고 싶지 않다. 언제고 갚을 수 있다는 확답도 없이 주변 사람들의 호의와 돈, 시간, 에너지를 끊임없이 빨아들이면서 자기 학대가 가깝게 일하는 삶은 사절이다. 받은 만큼, 이왕이면 좀 더 얹어서 보답하고 싶고, 혹여 지키지 못한 약속으로 남을 실망시키거나 분노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보수적으로 안전지향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무언가 남들과 다른 제품을 내놓는 회사와 사람들이 어떤 심정으로 살아가는지, 마음에 지고 있는 부담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책으로 살풋 배운 것보다 한 명이라도 직원을 고용해서 월급을 주며 사업을 해보는 게 더 낫겠지만.)

 

조금은 심술궂지만 만약에 가정까지 차린 상태에서 발뮤다가 그린팬을 출시하기 전에 파산했다면 어땠을까? 테라오 겐은 젊은 시절 망나니로 살다가 사업에 실패해서 참한 아내와 헤어지고, 두 아이를 자기 형제처럼 한부모 가정에서 어렵게 키운 아버지의 인생을 되풀이했을텐데. 그 때도 '나에게는 나의 가능성을 온전히 믿는 특별한 기술이 있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내게는 정신승리로만 보인다.

 

세상에 똥하고 오줌만 남기고 떠날 나같은 사람이 풍요롭고 평안한 문명을 누리는 건 테라오 겐같은 도전자들때문인걸 알면서도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 드는 이유였다.

 

어쩌면 이런 불편함은 공무원과 공공기관 사람들만 만나고 사업을 하는 분들을 거의 만나지 못하고 사는 생활때문에 생긴 걸 수도.

 

지금 온갖 난관을 헤쳐나가며 사업을 하고 계신 분들에게는 월급쟁이들의 감을 못잡는 위로보다 이런 선배 경영자의 솔직한 경험담이 위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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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쪽

 

가스가이 제작소에서 한 경험 중에서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물건의 형태가 바뀌어갈 때 필요한 에너지를 내 몸으로 직접 느낀 게 아닐까 한다. 금속을 깎을 때 기계에서 나는 소리는 상상을 초월한다. 금방이라도 고막을 찢어버릴 듯한 굉음이다. 고속으로 돌아가는 초합금 칼날이 부품을 깎아낼 때는 그동안 경험해본 적 없는 저항을 온몸으로 느꼈다.

 

196쪽

 

나는 단순히 물건을 만들고 싶은 게 아니었다. 디자인만 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하드웨어나 기술을 이용해 내 안의 창의력을 표현하고 싶었다. 뮤지션에게 노래가 있듯이 완성한 제품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는 법이다. 마치 록 밴드 같은 브랜드, 나는 그런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268쪽

 

(신제품 발표회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지인의 소개로 만난 가구 브랜드 대표가 자신의 가게에서 발표회를 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는 롯폰기 미드타운에 있는 넓은 점포를 마음껏 사용해도 좋다고 했다. 준비를 도울 사람도 회사엣 보내겠다고 했다.

언론사와 방송국 리스트도 가지고 있으니 초대장을 보내자고, 준비에 필요한 경비도 부담해주겠다고 했다.

"왜 이렇게까지 잘해주시나요?"하고 묻는 내게 그는 "이렇게까지 열의를 다하는 사람을 본 게 처음이라서."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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