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작가님의 논픽션. 소설 공모전에서 네 번이나 수상한 유일한 소설가라서 공모전에 대한 문제의식을 풀어놓더라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당당할 수 있는 분인데다가 동아일보 기자로 11년 동안 일하셨던 예리한 글쟁이라 시원하게 읽었다. 올해의 10대 논픽션 추천서 안에 들어갈 듯.
소설 공모전에서 시작해서 입학시험, 기업과 공무원 공개채용, 합격자 통제를 하는 국가전문자격증 등의 합격이라는 실력주의 시스템을 통해 내부자 집단의 일원이 되고, 미묘하게 외부자들을 차별하며, 지대추구를 하는 한국사회의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와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IT회사들이나 수시채용으로 전환한 현대자동차처럼 이미 시대의 흐름이 바뀌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한국사회의 다수가 인정하는 선별시스템으로 인한 폐해를 폭넓게 짚어보는 책이고, '공정하지 않다'는 각 분야 신출내기들의 불만이 어디서 나오는지 짚어줘서, 나같은 기성세대가 읽기 좋았다.
2016년 제21회 한겨레문학상에 응모한 이혁진님의 <누운 배>를 예심심사위원이었던 장강명 작가님이 본선에 올렸고, 결국 당선작이 된 것처럼 공모전이나 공채가 장점이 있긴 하지만 그게 유일한 통로나 '성골'의 증거가 되는 건 그 조직이나 업계의 경쟁력에도 좋지 않아 보인다.
(다만 이미 이 시스템이 허물어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 수혜를 담뿍 받은 내가 지적질로 거드는 건 그리 모양새가 좋지 않은 듯.)
장르문학의 문피아, 조아라, 카카오페이지, 네이버북스, 레진코믹스처럼 순문학계에도 작가들에게 수입을 올려주면서 독자들의 피드백도 받는 플랫폼이 생기면 좋겠는데, 황금가지의 브릿G나 카카오의 브런치는 좀 아쉽다.
최근 국내 베스트셀러 서평집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를 출간한 한승혜 작가님, <일간 이슬아>의 이슬아작가와 같은 시도를 응원한다. 오늘도 이렇게 경제적 이해관계가 없는 서평을 한 편 올리는 것이 좋은 책을 쓰는 작가와 출판사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내 나름의 지원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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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문학 권력, 문단 권력이라는 '긴 이야기'에 집착하기보다는, 어떤 사람이 변호사나 아나운서,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가 되는 방식은 어떠한지를 살피고 싶었다. 노동시장에서 채용 전문가들이 공채 제도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걸 문학공모전과 비교하고 싶었다. 논증할 수 없는 막연한 이야기보다는 수치, 통계, 실명으로 말하는 증언을 찾고 싶었다.
235쪽
지금 상당수의 사람들은, 아무리 장점이 많아도 공정성을 확실히 담보하지 못하는 제도보다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더라도 획일적으로 시험을 치러 점수를 기준으로 뽑는 게 차라리 낫다고 여긴다. 이런 분위기가 공채제도를 유지하는 큰 힘이기도 하다.
그런 정서를 비난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것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263쪽
노동 착취를 꿈이라는 단어로 포장하는 것만큼 역겨운 일도 없다. 동시에 나는 이들 업계에서 '지망생'들이 자기 착취에 빠지게 되는 상황이 현재 각 분야의 채용 또는 시인 선발 시스템과 상당한 연관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우리가 그걸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351쪽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데에는 돈 한 푼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도서관 이용자들은 '실패'를 두려워한다. 그 실패란 '상당한 시간을 들여 꾹 참고 읽었지만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책임을 뒤늦게 깨닫는 일'이다. 한 독자는 내게 그런 상황에 대해 "기분이 더럽다."라고 표현했다.
(중략)
인터넷 서점이나 포털 사이트의 서평 코너가 지금보다 훨씬 커지고 활발해지다면 거대한 책 손수레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일반 독자의 요구와 눈높이를 반영한, 정직한 평가가 충분히 많은. 심지어 독서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에게 따로 작은 손수레를 내주기까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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