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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연] 위장 취업노동자에서 늙은 노동자로 어언 30년(2017)

독서일기/사회학

by 태즈매니언 2020. 10. 4.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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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염두에 뒀던 책인데 이미 철지난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도 같다. 이제 몇 년 안에 그들이 정년퇴직을 하면 자연스럽게 문화가 바뀌겠지만 대기업 노동조합의 운영 방식에 대한 지식을 얻을 겸, 87년 대투쟁을 경험한 노동조합 활동가의 직업 수기라 생각하면서 읽었다.

 

관성화된 학생운동을 비판한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1998)>의 노동조합운동 버전처럼 느껴진 부분도 있었지만 실제로 공장노동자와 노조활동가로 일해온 저자 이범연님 개인이 자기 생각을 끝까지 밀고나간 책이라 전달력이 훨씬 좋았다.

 

다만 대기업 수출제조업 중심의 기업별노조라는 역사적 경로를 이제와서 바꿀 수도 없고, 이미 몇몇 섹터 외에 한국의 제조업들은 경쟁력을 읽은 상황에서 저자의 제안들이 그리 설득력있게 들리지 않았다.

 

노동방식이 다양화되고 플랫폼에 연결된 상황에서는 노동법원을 독립시키고, 노동사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거점에 모여 함께 일하며 친밀감을 쌓을 때 위력을 발휘하는 노동조합이 통용될 수 있는 분야는 제한적이란 생각이 든다.

 

GM대우의 정규직이었던 저자 자신이 여러 번 변죽을 울리긴 했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 갈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헌법상 보장된 공무운 외에 정규직을 없애야 한다는 유연화에 대해 진지한 검토를 회피한 것도 아쉽고.

 

그리고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사용자(자본가)들을 비난하는데 노동자 지주회사를 진지하게 고민은 하고 있는 것인지? 현재의 노조집행부처럼 회사도 2년마다 조합원 선거로 집행부(이사회)를 교체할 생각일까? 과연 그런 식으로 하면 단기이익 추수주의에 빠지지 않고 잘될까?

 

그래도 현장의 고민에서 나온 참고할만한 내용들이 많은 책이다.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은 조합원들의 단기적 경제적 이해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것은 알겠는데, 임금인상률은 공무운 임금인상률에 맞춰져 있고, 기관장의 권한이라고는 승진과 징계라는 상벌권 밖에 없는 정출연의 노동조합이 지켜야할 조합원의 이익이 뭔지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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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쪽

 

반복되는 선거 과정에서 서로 상처를 주는 행위들이 반복되고, 갈등과 반목이 증폭되면서 과거의 뜨거운 기억들을 모두 증발시켜 버렸다. 그렇다면 나는, 그리고 우리는 운동을 제대로 못한 것이 아닐까?

만날수록 힘을 주고, 기쁨을 생산하지 못하고, 서로를 지치게 하고 상처 주는 일이 더 많다면, 소원한 만남이 늘어만 가고 서로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의 기운이 퍼져나간다면, 세상을 바꾸겠다는 우리의 운동은 이미 실패한 것이 아닌가?

 

179쪽

 

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솔직한 말을 기대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스스로 조직하고, 스스로 싸우면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노조를 만들라. 그리고 싸워라."

 

213쪽

 

안다는 것과 공감한다는 것은 다르다. 비정규직 출신 정규직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태를 너무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정규직으로 전환된 지 몇 달이 지나지 않은 한 후배 노동자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가리키면서 이런 말을 던진다.

"쟤들 참 불쌍해요."

 

217쪽

 

우리가 일상에서 소비자의 입장에서 접하게 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감정 노동, 서비스 노동, 돌봄 노동, 판매 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조합에서) 배제된 노동자들이다. 연대는 투쟁의 현장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일상의 삶 속에서 만나는 노동자들 간에 연대도 뿌리 깊은 연대일 수 있다. 민주노총이나 산별노조에서 조합원들에게 이런 일상적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구체적 삶 속에서 실천하도록 지속적으로 교육하는 것도 검토해 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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