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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2019)

독서일기/사회학

by 태즈매니언 2020. 10. 28.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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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학회 세미나 때 내 의문과 견해를 적극적으로 말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었어야 했는데 후회된다. 한국에 사는 이상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소수자에 속할 일이 없어진 내가 이 책 한 권을 읽고서 무엇이 바뀌었을까?

 

다수자와 소수자를 나누는 방식은 무수히 많으며 우리 누구나 어떤 면에서는 다수자이면서 다른 측면들에선 소수자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런 다수자/소수자의 지위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스스로 미처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빈번하게 교체될 때도 많다는 것은 알겠다.

 

21대 국회에서 다시 장혜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 제정안 제3조 제1항 제1호는 이 법에서 금지하는 차별을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제2호부터 제6호까지 있고 같은조 제2항에 차별로 보지 않는 정당한 사유를 열거하는데 분량상 생락했다.)

 

1.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學歷),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신분 등(이하 “성별등”이라 한다)을 이유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의 영역에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배제·거부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

가. 고용(모집, 채용, 교육, 배치, 승진·승급, 임금 및 임금 외의 금품 지급, 자금의 융자, 정년, 퇴직, 해고 등을 포함한다)

나. 재화·용역·시설 등의 공급이나 이용

다. 교육기관 및 직업훈련기관에서의 교육·훈련이나 이용

라. 행정서비스 등의 제공이나 이용

 

기본권의 역사를 보면 법관의 영장없이 신체의 자유를 구속당하지 않을 권리부터 해서 하나하나의 영역들에서 차별이 해소되어온 과정들이 쭉 펼쳐진다. 없어진 호주제로 인해 호주가 될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느끼는 사람은 이제 없는 것처럼 예전에는 왜 이런 차별이 있었는지 이해하는데 지리학과 인류학적인 지식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 정도다.

 

인간은 아직도 파충류의 뇌를 가지고 있지만 침팬지 사촌들과 갈라진 진화의 과정에서 불, 언어, 종교와 같은 발명 등을 통해 개체들 사이의 협력의 강도와 범위를 확대해온 집단들이 효과적으로 협력하지 못한 집단을 정복하고, 보다 많이 번식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지난 1만년 동안 열심히 발전시켜온 서로 협력하는 능력의 결정판이 바로 헌법에 근거한 국가공동체이다. 그런데 법안에 '국적'이 들어가 있다니. 외국인과 국민을 구분한 대한민국헌법의 틀이 더 넓은 지향을 가진 저 조항을 포함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는 공동체가 과연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그런 공동체에 누가 소속감을 느끼고 헌신해야 한다는 부채의식을 가질까?

 

존 롤스식 '무지의 장막'이 차별금지를 위한 최상의 해결책이다. 하지만 우리 누구도 태어나기 전에 자기가 태어날 스타팅포인트를 주사위 던지기로 고르지 않았다.

 

유러피언 드림의 축배가 러시아의 회복과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브렉시트 이후로 무안해진 것처럼 외국인에 대한 개방 정도는 주권자의 의지에 따라 달린 것이고, 경제적 풍요와 일자리 문제에 밀접한 영향을 받는데 도덕주의적으로 국적에 기한 차별을 빼는 것은 차별금지법의 근본과 모순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차별은 함께 예기치 못한 고난을 겪으며 쌓은 '연대감(멧경환님의 오늘 포스팅 참고)'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과도하게 차별 문제에 집착하는 이들을 내가 경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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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쪽

 

누군가를 무언가로 호명할 수 있는 것은 권력이다. 누군가를 향한 놀림을 '가벼운' 농담으로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알려준다. 반대로 원하지 않는 기표가 자신에게 부착되는 경험은 소수자로서 사회적 위치와 무력한 상태를 확인시켜준다.

 

141쪽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어떤 사적 특성이 공공의 장소에서 받아들여지는가? 공공 공간의 주인은 누구인가? 공공 공간에 입장할 자격은 누가 정하고 통제하는가?

 

147쪽

 

모튼 도이치는 정의의 범위가 자신이 소속된 "도덕적 공동체"의 경계를 따라 형성된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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