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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훈]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2019)

독서일기/사회학

by 태즈매니언 2019. 7. 1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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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민경제의 급격한 성장은 결국 국가간 교역 재화 및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무역을 통해 올린 부가가치의 유입, 그리고 그 유입된 유동성이 조세와 국내 비교역 분야 종사자들에게 배분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반도체, 화학, 자동차, 조선, 게임제작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내가 공공부분에 있다보니 그 분야에서도 민간 수출기업에 근무하시는 분들께는 존중하는 마음이 배가된다.

 

그래서 까막눈인 문돌이이고, 금융투자에 관심은 없지만 거시경제와 고용지표과 GDP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수출산업동향에 대한 귀동냥은 꾸준히 하려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 영주권을 발급해주면서 오라고 해도 거기서 지금 하던 업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궁극적으로 누가 지금 내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지는 알고 있어야 예의라고 생각하니.

 

올해 1월에 나온 이 책은 여러 페친들께서 극찬한 책이었다. 최근 최병천님이 긴 서평(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2757781217582713&id=100000525857011)을 남기기도 하셨고. 나는 이혁진님의 소설 <누운 배>를 통해 조선소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살아가는지 듣게 되면서 이어서 읽게 되었다. 변방왔을 봤으니 중심을 보고 싶었다. <누운 배>의 배경인 호황기를 틈타 중국으로 진출한 한국의 중소조선소가 세계를 제패한 조선강국 한국의 문어발이라면 이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는 그 총본산인 거제도를 다룬다.

 

내용이 정말 훌륭하다. 덕분에 선박제조와 해양플랜트가 얼마나 서로 다른지 처음 알았다. 내 올해의 책 후보로 올렸다. 앞으로는 조선산업과 거제도에 대한 뉴스가 지금까지와 다르게 들릴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최근에 산 책도 2쇄인걸 보면 아쉽게도 책이 불러일으킨 큰 반향에 비해 판매량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거제도에서 조선업에 종사하는 분들만 보셨어도 몇 쇄는 더 나갔어야 하는데.

 

내가 처음에 사회학과에 지원할 때 이런 연구를 하는 학문이지 않을까 했던 '산업사회학'에 인류학적인 참여관찰이 함께 녹아있으면서 말미에는 정책보고서 요약본까지 담겨 있다. 궁금하신 분들은 위에 링크한 최병천 님의 서평을 참고하시길 추천한다.

 

읽고 나니 광역시가 아닌 비수도권의 제조업 도시들은 과연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 라는 물음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거제시가 극단적으로 조선업에 치중했고, 조선업이 해상물동량, 그리고 미국의 GDP성장률의 영향을 많이 크게 받는 경기변동성이 높은 수주산업이라는 특성이 있어서 가장 먼저 겪은 것 뿐이지 다른 비수도권 지방의 남초 제조업 도시들도 결국은 비슷한 길을 겪에 될 것 같다. 당사자들에게 최적의 선택들이 누적된 결과라 누구에게 책임지울 것도 없다. 90년대생 '남녀'들이 자기가 살던 고장과 수도권을 제쳐두고 기존에 축적된 문화가 있는 비수도권 남초 제조업 도시로 이주를 선택할만한 고용안정성+높은 임금 패키지는 이제 불가능하고,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어떤 고민을 하더라도 앞의 패키지같은 매력적인 유인제도를 내놓긴 어렵다고 본다.

 

책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공무원/공공기관 가족의 유토피아 워너비'인 세종시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삼성/대우의 정규직, 하청업체와 물량팀을 보면서 거의 완벽한 고용안정성과 나쁘다고 할 수 없는 임금이 패키지로 보장되는 공무원과 공공기관 정규직, 공공기관 기간제근로자들과 일용직들이 떠올랐다. 배우자를 따라 귀양살이하듯 낙향했지만 육아나 거주여건은 또 괜찮아서 소위 '4인 정상가족'들은 만족하고 있지만, 수도권에 연고를 둔 청년층들은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고 뒤떨어진 문화소비 인프라에 염증을 내는 상황도 판박이처럼 똑같다. 양쪽 다 행정구역 내에 종합대학 하나 없기도 하고.

 

혹여 다음 정권에서 공공기관 통폐합과 30% 이상 인력 감축, 공무원 보수체계 개편이 콤보로 오면 세종시는 어떻게 될까? 그런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걸 알고 대비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수도권에 살고 있는 90년대생들이 이주하고 싶은 도시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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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쪽

 

'중공업 가족 프로젝트'는 애초에 배제와 포섭을 전제로 한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거제로 이주한 정규직(사무직/생산직)들이 회사 공동체의 이름으로 가족으로 형성함으로써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극복하고, 결혼과 출산을 통해 직계가족을 구성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하지만 중공업 가족은 하청 노동자들을 배제했고, 여성들과 딸들의 공간을 결혼 생활의 영역에 한정 지었다. 무엇보다도 중공업 가족은 그들과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진 젊은 세대들에게 그 약점을 남김없이 드러냈다. 젊은 세대는 셔틀버스로 출퇴근을 하는 쪽을 택함으로써 중공업 가족이라는 틀을 거부하교, 경기에 따라 이직을 선호하는 등 확실히 다름을 표방했다. 딸들은 거제를 떠나 돌아오지 않음으로써 아빠들의 믿음을 저버렸다. 노동자들의 '단순한 삶'은 나름대로 예찬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으나, 가족 안에 머무르기를 꺼리는 이들에게 그것은 한낱 보수적인 삶의 형태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중공업 가족은 빈축을 샀다. 조선산업의 경기가 위축되면서 중공업 가족 내부의 모순과 긴장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320쪽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흥청망청' 서사는 하루 종일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도시를 섬세하게 들여다보기도 전에 비하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선은 도시와 시민들을 살아 있지도 죽지도 않은 '좀비'로 만들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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