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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도르 카진스키/조병준 역] 산업사회와 그 미래(1995) -두번째 독후감

독서일기/거대담론

by 태즈매니언 2020. 10. 14.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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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국에 관한 뉴스를 듣다보니 울화통이 터져서 올해의 책 후보로 점찍은 이 책을 다시 봤다. 1995년에 쓴 3만 5천자 분량의 섬찟한 예언서.

 

카진스키 선생님 말씀대로 '테크놀로지는 자유에의 열망보다 더 강력한 사회적 힘'이라면 앞날이 암담하다. 이 분이 중국에 대해서 한 말씀 안해주시나.

 

피터 터친이 <초협력사회>를 보고서 FAANG과 같은 플랫폼제국을 구축한 반신(半神:플루토크라트)들은 나머지 99.9%의 인류들에게 과거의 ‘기마궁수’나 ‘중갑기병’처럼 집단 차원의 보다 높은 협력방식을 찾아내는 선택압을 주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었다.

 

FAANG은 우스운 수준으로, 14억 명의 사람들을 영장류계의 흰개미로 개조하는 중국 정부의 거대한 실험이 성공하면 어떻게 될까? 과연 인간이 포유류 흰개미가 되는 게 인류 협력의 폭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개체가 감당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진화적인 적응일까?

 

성공의 대가로 중국정부의 전세계 악의 축 중국 만들기 프로젝트도 뒤따라 순조롭게 진행되서 후기 산업사회의 무기력한 개인들이 반중의 구호 아래서 세계적으로 협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중화'라는 지리적 관념에 갇힌 중국인들이 구소련처럼 체제 경쟁을 끌고 가지는 못할 것 같은데.

 

카진스키 선생님은 테크놀로지 발전의 논리적 귀결점이 단일한 독재조직이건 '협동과 경쟁 관계를 맺고 공존하는 몇 개의 분리된 조직들'이건 상관하지 않았지만 중국인이 아닌 사람들이 중국공산당 영도체제와 소수의 거대플랫폼 제국들 중에 선택하라면 당연히 후자를 택하지 않을까?

 

이런 시대의 중국을 바로 옆나라에서 겪는 건 무력감 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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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쪽

 

장춘매(중국 국가사회당 당수)에 따르면, 자유는 국가와 전체 인민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오로지 다른 사람이 정해 놓은대로 밖에는 사용할 수 없는 자유라면, 도대체 그것을 자유라고 할 수 있는가?

(중략)

어떤 사람이 자기가 충분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말한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충분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단정햇는 안 된다. 자유는 사람들이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심리적 통제에 의해 제한당한다. 게다가 무엇이 자유를 구성하는가에 관한 사람들의 생각 자체가 자신들의 진정한 욕구보다는 사회적 관습에 의해 더 많이 결정된다.

 

 

98쪽

 

인간 정신에 대한 통제가 하나씩 새롭게 등장할 때, 그것은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합리적 반응으로서 간주될 것이다.

 

112쪽

 

우리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끝없는 경쟁이 펼쳐지는 미래 사회를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상의 자리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한 사람이 자신의 권력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을 밀어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의 권력에의 기회를 박탈해야만 하는 사회, 참으로 끔찍한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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