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시리즈 중에서 김윤관 목수님의 <아무튼, 서재>가 내겐 최고였는데 이런 강력한 경쟁자라니.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의 저자 김혼비님의 사람 빵터지게 하는 묘사력은 여전했다.
다음웹툰에 연재되어서 완결까지 재미있게 봤던 미깡님의 <술꾼도시처녀들>의 농축버전을 보는 느낌이었다. 술 마시는 남자들이 훨씬 많은데 분발이 필요하다. ㅠ.ㅠ
나도 매주 월요일 저녁에 술자리를 같이 하는 술친구들이 있고, 안주와 술을 흡입하며 서서히 기분 좋게 취해가며 마음의 결계와 말문이 열리는 술꾼이다. 체질적으로 알코올 흡수를 못하는 게 아니라면 종종 사람이 아닌 '술 취한 원숭이'가 되어 보는 것도 괜찮다고 권하고 다니는.
그리고 읽으면서 나처럼 줄글이 빽빽한 헤비 페부커들은 타임라인을 술자리 방담 대신으로 쓰는 것도 같더라. 굳이 안해도 되지만 조심성을 내려놓고 “아, 내가 어제 읽은 책이 말이야..”라며 취한 말들을 쏟아내는 넷드링킹을 즐기는.
아래 인용한 79~80페이지 부분을 읽다가 깜짝 놀랐는데, 나는 같은 이유로 누군가의 집에 가거나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하는 걸 즐겨한다. 좀 부담되지만 서로 좀 더 알아갈 결심을 하고 에너지를 쓴다는게. 심지어 매주 보는 술친구도 집에서 같이 술마시면 직장동료라는 막이 걷어내진 듯한 편안함이 있다.
김혼비님이 와인의 세계를 알고 초입에서 빠져나오기로 결정한 134쪽 부분의 이야기는 다른 분야에도 충분히 활용하기 좋은 판단기준인 것 같고.
아.. 갑자기 권여선 작가님의 술냄새 그득한 소설 마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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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쪽
웃을 수 있는 포인트가 비슷하다는 건, 이미 정치적 성향과 세계관이 비슷하다는 말을 포함하고 있다. 무엇을 유머의 소재로 고르는지 혹은 고르지 않는지(후자가 좀 더 중요한 것 같다.), 그걸 그려내는 방식의 기저에 깔린 정서가 무엇인지는 많은 것을 말해주니까.
79~80쪽
사실 밤이든 낮이든 누군가의 집에 가는 것 자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중략)
그 사람이 집 안에 숨겨두거나 남겨둔 모습 말고 그가 집 바깥으로 가지고 나가기로 선별한 모습, 딱 그만큼까지만 알고 대면하고 싶은데, 집 안 구석 어딘가에 묻어 있는 무방비하고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면모, 이 사람 또한 인간으로서 나름 매일매일 실존적 불안과 싸우고 있으며 누군가의 소중한 관계망 속에 자리하고 있는 존재라는 걸 상기시켜주는 흔적을 봐버리면 필요 이상의 사적인 감정과 알 수 없는 책임감 비슷한 감정이 생겨 곤란하다.
게다가 집은 대개 말이 많다. 모든 사물들이 집주인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는 걸 내내 듣다 나오는 건 제법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134쪽
이 취향의 세계에서 지속적 만족을 얻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지속적 만족이 불가능하다면 그 반작용으로 생길 지속적 결핍감에 대처할 수 있는가. 취향 확장비(혹은 유지비)를 나의 노동력과 시간으로 환산했을 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는가. 취향 확장비로 얻을 수 있는 다른 것들과 비교했을 때,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게 확실한가.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너는 취향의 확장을 감당할 깜냥이 되는가!
155쪽
지나치게 걱정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잠시, 혼자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스쳐 갔던 못마땅한 시선들을 떠올려봤다. 그중에는 괘씸함을 넘어선 적의도 분명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꼴 보기 싫어했다. 꼴 보기 싫은 마음이 문명의 선을 조금 넘으면 꼴을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이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여자 '혼자' 아닌가.
(중략)
"세상 참 좋아졌다. 여자가 초저녁부터 밖에서 혼자 술도 마실 수 있고"라는 비아냥은 재수 없지만 시사하는 바 또한 분명히 있다. 그렇다. 여자들이 조금의, 아주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법적으로 허용된 공간이라면 그 어디에서든지 밖혼술을 마실 수 있는 세상이 당연히 좋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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