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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너라는 생활(2020)

독서일기/국내소설

by 태즈매니언 2021. 4. 13.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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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혜님의 추천으로 알게된 소설가 김혜진님은 장편인 <딸에 대하여(2017)>, <9번의 일(2019)>만 봤는데 단편을 처음 접했습니다.

 

8편 중 두 커플의 성별이 모호한 <팔복광장> 외의 작품들은 모두 주인공이 대도시(아마도 서울)에서 독립해서 사는 2-30대 여성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단편에서 그네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좀 더 쾌적하고 안전하며 에티켓을 갖춘 이웃들이 있는 안정적인 주거공간을 마련하는 것이고요.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20대 급여소득자의 평균연봉은 약 3천만 원, 30대 급여소득자는 4,500만 원 정도라고 합니다. 본가의 도움없이 혼자 살 수 있는 소득이긴 하지만 선물같은 목돈 없이는 이들이 가장 원하는 ‘주거의 질’을 높일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LTV/DTI 대출한도가 축소된 최근 몇 년 사이에 더욱 심해졌고요.

 

이런 정도의 소득으로는 자신이 만족할만한 경험을 소비하기엔 적당할지 몰라도 동거인과 둘이 같이 누리기엔 빠듯하죠. 운좋게 동거인도 사업소득을 쏠쏠하게 올리거나, 풀타임 직장을 가지고 있는 급여소득자가 아니라면요.

 

소영형 문학평론가의 해설 제목이 <하나는 너무 적지만 둘은 너무 많다>인데, 이 문제를 잘 포착한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단편집의 여성 동거인 커플 3부작인 <자정 무렵>, <동네 사람>, <아는 언니>와 <팔복광장>에 이런 딜레마 상황이 깔려있지요.

 

새로운 정서도 아니고 제가 좋아하는 김애란 작가의 <침이 고인다(2007)>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10년이 지나면서 소득에 비해 서울의 주거비용이 올라가다보니 더 심각해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를 돈으로 틀어막지 못해 벌어지는 파열음이지만, 상대방을 떠나는 선택을 차마 하지 못하고 익숙한 관계에 머무는 주인공들의 소극적인 태도가 안타깝더군요. 이런 리스크회피적인 태도 역시 예산제약으로 선택의 폭이 좁은 가난한 사람들의 특징이니까요.

 

합리적이고 판단력이 좋은 주인공과 감정적이고 사회생활 경험이 부족하거나 판단이 흐린 동거인이라는 구도가 좀 전형적이고 계속 반복된다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그나저나 난생 처음 묵어보는 5성급 호텔에서 이 소설집을 읽다니. 뭔가 좀 안어울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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