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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솔아] 최선의 삶(2015)

독서일기/국내소설

by 태즈매니언 2021. 1. 7.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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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한승혜님의 넘 아름다운 서평을 읽고서 나도 읽어봐야지 했던 모르던 작가의 첫 장편소설. '나 너무 편하게 사는 거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평일 하루의 마무리로 집어들었다. 다 읽고 나니 뺨이 난방 잘되는 침대에서 유흥가 뒷골목의 구정물이 줄줄 흐르는 시멘트 바닥으로 순간이동한 것 같다.

 

아마 <최선의 삶>(2015)을 영화 <박화영>(2019)보다 먼저 봤더라면 좀 더 인상깊었다고 느꼈을텐데. 비슷한 것 같지만 <박화영>쪽 결말이 더 좋았다. 아람과 소영, 강이 세 인물 중에서 나는 아람에게 가장 마음이 가더라.

 

<최선의 삶>은 내년 개봉을 목표로 영화제작 중이라고 한다. 읍내동과 전민동이 소설의 배경이라 대전사람이라면 더 몰입해서 읽으실 것 같다.

 

어린 시절의 치욕은 대부분 잊었지만 억지로 맡겨진 반장이라는 완장때문에 '그냥'이라는 이유로 규칙을 지키지 않고 같은 반 애들에게 피해를 주는 맨 뒷자리 애들을 상대하는 게 참 힘들었다.

 

규칙을 지키라고 했다가 눈을 부라리고 주먹을 치켜들고 달려드는 짐승같은 모습에 겁먹어, 다들 지켜보는 앞에서 비굴하게 꼬리를 말고 눈감아 주기도 여러 번, 그 와중에 완장때문에 직접 맞아터지는 최악의 쪽팔림은 면했다는 은밀한 안도감을 즐기는 내 자신이 혐오스러웠고, 그 다음 학기에도 그 은밀한 안도감을 누릴 수 있는 보호막을 쳐주는 완장을 결국엔 또 거절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이 소설의 주인공 강이가 자조하며 읊조리는 '병신' 같았다.

 

환경과 유전적인 기질의 영향으로 사소한 선택도 능동적으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또래집단에서는 그런 성향이 어떤 참사를 빚어낼 수 있는지 <최선의 삶>과 <박화영>이 보여준다. 이런 경우에 최악의 선택을 하지 않도록 '나에게 최선인 선택을 고민해보는 습관’이 왜 중요한지를 일깨워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가족 뿐이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성인이란 자격은 처한 상황이 어떻든 스스로는 자기 나름의 최선을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 부어되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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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쪽

 

집에서 받은 상처를 길에 조금씩 버리듯 아람은 매일매일 자신의 상처를 내게 말해주었다. 하지만 아람은 집보다도 길에서 더 큰 상처를 받았다. 집에서 받은 상처 따위는 어린아이의 것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집에서 받는 상처를 시시하게 여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집이 아니라 길을 선택한 걸 다행으로 여겼다. 집도 시시하게 여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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