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농막>
45화 : 정화조, 또 너냐...
토공사로 밭을 매끈하게 정리한 기쁨을 채 하루도 누리지 못하고 제 마음은 천당에서 지옥으로 소환되었습니다. 토공사가 끝났으니 이제 정화조 공사를 할 차례라 현장소장님께서 공주시에 등록된 하수도 설비업체를 통해서 허가 신청을 냈습니다.
이미 한 달 전에 농막 사이즈를 잘못 전달하면서 푸닥거리를 했었고, 평면도를 전달해서 문제없다는 상하수도 담당자의 행정해석을 들었기 때문에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제 관심사는 최대한 농막과 이웃집에 메탄가스 냄새를 안풍기고, 대형 차량이 출입하더라도 무게로 인해 파손되지 않을 수 있도록 5인용 정화조를 놓을 위치를 잡는데 쏠려 있었지요.
그런데, 신청하고 며칠 후 이양재 건축사님과 현장소장님으로부터 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담당자 분께서 공주시의 업무처리 지침에 따르면 농막이 18제곱미터 이내긴 하지만 정화조 면적만이 아니라 배관면적까지 합산해서 2제곱미터 이내여야지 총 20제곱미터 이하가 되어서 농막에 정화조를 설치할 수 있어서 제 오수처리시설(정화조) 설치 신청을 승인해줄 수 없다는 날벼락같은 소식이네요.
이달 말에 농막이 출고되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지난 번 진입로 문제에 이어서 두 번째 고비였습니다. 제가 거리에 대한 감이 없었지만 농막 오수배관 직경을 150mm로 할 계획이었으니 가장 작은 3인용 정화조가 1.08제곱미터를 차지하니 결국 0.92제곱미터 이내에서 배관을 뽑을 수 있는 배관길이는 6미터 남짓 밖에 안되거든요.
멘붕이 와서 단톡방에서 대책회의를 했습니다. 일단 기존의 농막 배치 계획은 다 엎어버렸습니다. 이양재 건축사님과 현장소장님께서 농막을 최대한 입구쪽에 붙이고, 화장실 배관이 입구쪽에 제일 가깝도록 배치방향도 북향으로 돌린 다음, 배관 직경을 100mm로 줄이면 9.2m가 나오니 이 정도면 빠듯하게 가능할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죠.
휴일인 다음날 아침, 불안한 마음으로 밭으로 가서 줄자로 진입구 바로 앞이자 밭의 경계면에서 50cm 떨어진 곳에서부터 일직선으로 거리를 재봤는데, 사진처럼 10미터가 살짝 넘습니다.
와...농막은 골조가 튼튼한 아연도각관인데다 이미 내장공사 중이라 이제와서 면적을 16~17제곱미터로 줄일 수도 없는데... 수세식 화장실을 포기하고 생태변기를 써야 하나, 아니면 위법행위를 감수해야 하나 마음이 복잡해지더군요.
단독정화조는 블로워라고 불리는 가스배출 기둥때문에 누구나 슬쩍 보면 존재를 알 수 있는데, 이런 걸 허가받지 않고 설치했다가 현장점검이나 주민신고로 적발되서 과태료에 원상복구 안해서 이행강제금까지 내는 상황을 감수하면서 농막 연재를 계속 할 수도 없을테고요.
건축법에서도 정화조 배관면적을 건축면적에 산입하지 않는데, 법령이나 조례에 근거도 없고, 대외적 구속력도 없는 행정규칙이니 반려처분에 대해 다퉈볼까고 고려해봤습니다. 그런데, 3주 후에 농막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답이 아니다 싶더군요.
며칠간 '내가 왜 농막을 한다고 했을까?'하는 후회를 수십 번 하면서 기분이 바닥을 쳤습니다. 명색이 변호사라는 사람이 건축팀에서 가설건축물 신고할 때 담당자로부터 구두로 '정화조 면적이 2제곱미터 필요하니, 18제곱미터 이내로 신고하세요.'라는 말만 믿고, 농막을 주문하기 전에 주무 담당자에게 정확한 정화조 면적 산정 기준도 확인해보지 않았다니 한심하지요. 거의 모든 농막 선배들이 농막에서 가장 어렵고 중요한 것이 정화조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말이죠.
제가 인터넷에서 검색해본 농막 정화조 허가 사례들 중에서 단독 정화조 면적 외에 배관면적까지 합산해서 농막 면적에 산입한 사례를 한 번도 못보긴 했지만, 이런 사실이 별다른 위안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웃 김씨 어르신과 신씨 어르신께도 여쭤봤는데 농막 면적에 정화조 배관 면적까지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으셨다네요. 왜 인구가 줄어서 비상인 공주시에서 이렇게 다른 지역보다 까다롭게 허가 기준을 두는지 같이 한탄을 해주셨지만, 농막에 정화조 설치를 허가받은 사례나 방법은 모르시더군요.
내가 싼 똥을 내가 치우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46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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