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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 2제곱미터의 전쟁

아무튼, 농막

by 태즈매니언 2021. 5. 13.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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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농막>

 

46화 : 2제곱미터의 전쟁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해결방법을 더 알아볼 기력도 안나더군요. 그로기 상태의 저를 대신해서 현장소장님께서 공주시의 여러 공무원들에게 계속 문의를 하신 끝에 '공주시에서 농막 면적에 산입되는 배관면적은 농지를 지나간 배관에 대해서만 적용된다.'는 면적 담당자의 행정해석을 듣고 제게 전해주셨습니다.

 

국유지인 하천부지에 대한 점용허가가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가능성있는 활로가 보이니 다시 힘이 나네요.

 

다음날 공주시 하천계획팀 담당자를 찾아가서 지방하천에 정화조 오수관을 연결해서 배출하는데 점용허가가 필요한지 문의드렸더니 이런 사례를 처리해본 적이 없어서 상하수도 인허가 담당자와 내부검토를 하고 알려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두 담당자 분들이 업무협의를 하시기 전에 상하수도 인허가 담당자를 먼저 찾아가서 제 주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지네요.

 

이양재 건축사님께서 국유지인 하천부지 내에서의 배관길이는 빼고, 제 밭의 하천쪽 끄트머리까지 나가는 100mm 배관의 길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배치도와 오수 계획도 도면을 서둘러서 작성해주셨습니다.

 

저작권 : 엘리펀츠 건축사사무소 이양재 건축사님
저작권 : 엘리펀츠 건축사사무소 이양재 건축사님

 

이렇게 되면 농막이 도면처럼 제방길 바로 옆에 위치하게 되고, 폴딩도어의 향도 북서향이 되며, 제가 생각한 현관에 평상을 붙이는 것도 불가능해지지만 이렇게라도 정화조 설치가 승인된다면 이런 불편은 아무 것도 아니게 느껴졌지요.

 

건축사의 설계도면이라는 든든한 무기와 검색해서 찾은 농막 관련 농지법 해석례와 하천 점용허가 관련 판례와 참고사례를 준비해서 상하수도 인허가 담당 공무원분을 찾아갔습니다. 민원을 위해 옷도 제대로 갖춰입고 갈 정도로 절박했지요.

 

운좋게 다른 민원인들이 없었고, 이미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한 사이였지만 아무래도 직접 뵙고 말씀드리니 좀 더 차분히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더군요. 결국 하천 점용허가는 필요하지 않고, 제출한 오수계획도 도면으로 정화조 승인이 가능하다는 구두통보를 받았습니다.

 

저작권 : 엘리펀츠 건축사사무소 이양재 건축사님

 

전 당시 그냥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무허가로 정화조를 묻어버릴까 싶었습니다. 이 때 관련 부서에 수십 번이나 전화를 하고, 공주의 정화조 업체에 계속 방법을 문의해주신 현장소장님, 출장에 설계일로 바쁘신 상황에서 대가를 받는 것도 아닌데 곧바로 오수계획도 도면을 만들어주신 이양재 건축사님이 아니었더라면 절대 제가 정화조 허가를 받지 못했을 겁니다. 두 전문가 분이 없었다고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정화조가 너무 입구에 인접해있다보니 제가 당초에 생각했던 공간 배치 계획이 다 어그러졌고, 불편한 점들도 있을 것 같지만 도면을 계속 들여다보니 바뀐 배치가 오히려 장점이 되는 부분도 꽤 많아 보이네요.

 

어차피 천변쪽은 사람과 차량이 다니는 통행공간이라 사생활 노출을 피하려면 건물이 등을 지는 것이 유리합니다. 6미터 3미터 매스의 농막이 제 밭 안쪽에 대한 통행인들의 시선을 차단해주니까요.

 

남동향에는 낡은 농협창고와 회색 컨테이너 농막의 뒷면이 있어서 그다지 전망이랄 게 없는데, 북서향은 마을 뒷산이지요.

 

게다가 어차피 상시 주거가 아닌 곳이고, 겨울철에는 찾을 일이 별로 없으니 여름의 직사광이 차단되고, 순광이라 하루 종일 눈이 편안한 빛을 누릴 수 있는 북향의 장점이 부각됩니다. 땅의 모서리에 농막을 놓다보니 폴딩 도어를 열었을 때 제 밭의 모습이 한 눈에 다 들어오는 것도 장점이 될 수 있고요.

 

인간은 역시 자기 합리화의 동물입니다.

 

(47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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