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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아그라왈/윤신영, 우아영 역] 빌트(2018)

독서일기/도시토목건축

by 태즈매니언 2021. 5. 17.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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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공학자가 쓴 공학교양서. 공주시의 건축전문 독립서점 고마다락에서 발견한 책인데, 역시 독립서점을 가면 페북에서는 소개받지 못한 멋진 책들을 발견하게 된다.

 

공학의 발전으로 토목과 건축분야에서 이룬 성취들이 사람들의 삶의 질을 얼마나 향상시켰는지를 전체적으로 보려면 <사이언스 앤 더 시티>, 한국의 동시대인의 시선으로는<아파트가 어때서>를 추천했는데, 또 한 권의 책을 더할 수 있게 되었다.

 

구조공학자들은 물리학을 사랑했으나 깨달음보다 자비의 길을 택한 보살같다. 주문같은 수학용어들로 소통하고, 복잡한 프로그램을 돌려 숫자와 의견을 내놓을 뿐 사람들과 쉽사리 타협하지 않는 이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인도계 여성이라는 소수자의 시각과 건축의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덕분에 좀 어려운 내용이었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다만 저자의 커리어상 초고층빌딩과 교량 사례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내 직장이 고양시에 있을 때 바로 이웃 기관이 건설기술연구원이어서 구조실험동이나 풍동실험동 등이 있었는데, 실험동 건물이 워낙 많아서 지방이전 안해도 되는 걸 부러워했을 뿐 어떤 일들을 하는 곳인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게 아쉽다.

2013년 봄 퐁피두 센터를 구경하러 갔을 때도 건물의 설비들이 모두 드러나 있는 모습을 일종의 디자인으로만 봤었지, 곤충의 외골격처럼 구조공학적인 시도라는 걸 전혀 몰랐고.

 

로마인들이 사용했던 벽돌과 지금의 점토 벽돌의 차이점, 저렴한 강철제련법을 발명한 헨리 베서너의 위대함, 비록 실패한 도전이었지만 브루넬과 인부들이 뚫은 TMB의 조상격인 '더 실드' 등이 재미있었다.

 

구한말 조선인들이 뉴욕을 처음으로 방문했던 즈음에 완공된 브루클린 브리지가 뉴욕시-브루클린시-개인투자자들이 투자한 PPP사업이었고, 청계천 석재 아치교와 '공압식 잠함'기술과 강철 와이어를 사용한 경간 486미터의 현수교가 보여주는 두 나라의 격차는 얼마나 아득했는지.

 

여기에 더해서 사회적 제약상 독학으로 교량공학을 공부하긴 했지만 브루클린 다리 건설사업의 실질적인 PM이었던 1843년생 에밀리 워런 로블링과 무려 반세기 나 후의 인물인 1896년생 나혜석이 겪어야 했던 차이를 생각하면 이젠 주요 선진국이 된 한국이 참 많이 따라오긴 했구나.

 

건조물을 밀고 당기고 흔들고 뒤틀고 쥐어짜고 구부리고 가르고 찢고 부러뜨리고 쪼개는 힘들에 맞서 우리가 누리는 인프라들을 설계하고 만든 엔지니어들에 대해 다시 감사하게 된다.

 

과학동아의 두 기자님들이 번역해주신 덕분에 2019년에 나온 책인데, 내가 산 책이 아직 2쇄인 걸 보면 아쉽다. 좀 더 많이 읽혔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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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쪽

사실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를 설계한) 구조공학자는 항공기가 부딪칠 가능성을 이미 설계에 고려했다. 설계자는 보잉 707(공사 당시 운항 중이던 가장 큰 민간항공기)이 건물에 부딪칠 경우를 연구하고, 그에 대비해 설계를 했다. 보와 기둥은 서로 아주 단단히 연결되어 있어서 일부 구조물이 사라지더라도 하중이 다른 곳에 전달될 수 있었다. 하중은 구멍 주위를 따라 흘러가게 되어 있었다.

문제는 쌍둥이 빌딩에 부딪친 항공기가 거의 30년 전에 엔지니어들이 설계에 포함시켰던 보잉 707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더 많은 항공 연료를 싣는, 더 커다란 767 항공기였다.

 

76쪽

 

엔지니어는 사고에서 배운다. 이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끊임없이 개선하는 것, 다시 말해 더욱 좋고 강하며 안전한 건축물을 짓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엔지니어의 임무다.

 

122쪽

 

콘크리트는 자신이 견뎌낸 압축력의 수십 분의 1에 불과한 장력에도 갈라진다. 이것이 내가 판테온에 깊이 감동하는 또 다른 이유다. 로마인들은 콘크리트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돔이 어떤 원리인지를 정말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콘크리트가 판테온을 짓기에 이상적인 재료가 아님에도 이를 이용했다. 그것도 아주 훌륭하게.

 

150쪽

 

각종 불편에도 불구하고, 서기 300년쯤에는 로마 인구 대부분이 인술라에 살았다. 이런 건물이 4만 5천채 있었고, 1인 가구는 2천 채가 채 안되었다.

 

224쪽

 

이란에는 3만 5천 개가 넘는 카리즈가 있다. 수십만 개의 지하도관으로 이뤄진 네트워크가 노동으로 건설됐고, 여전히 주요 물공급원이다. 고나바드시에는 이란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기다란 수도관이 있다. 2,700년 전에 만들어진, 길이 45km의 도관을 통해 4만 명에게 물이 공급된다. 헤드 우물은 더 샤드의 높이보다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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