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태가트 머피/윤영수 박경환 역] 일본의 굴레(2014)

독서일기/일본

by 태즈매니언 2021. 9. 23. 22:15

본문

이 책때문에 <서울 리뷰 오브 북스> 3호를 못보고 있었다. 내 나름의 감상을 정리한 다음에 3호에 실린 <일본의 굴레>에 대한 서평을 읽고 싶었기 때문에.

 

여러 페친님들께서 평가하신 것처럼 충실하고 빼어나다. 내 올해의 책 후보로 올리는 게 당연한. 일본의 정치사에 대해 무지했을 때 읽었던 존 다우어의 <패배를 껴안고> 정도의 충격은 아니었지만 이런 책들을 읽어서 감동이 반감된 것이고, 일본의 정치와 사회구조를 단 한 권의 책으로 이해한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1부 굴레의 기원은 2부 오늘의 일본을 구속하고 있는 어제의 굴레를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인 일본사 축약본에 해당하는데 일반적인 요약과는 달리 지리한 사실관계가 아닌 정치사상의 핵심 장면을 묘사하고 있어 저자 태가트 머피의 필력에 감탄했다.

 

특히 55년 체제 이후의 일본 정치사에 대해서 지리멸렬한 파벌 영수들 간의 이합집산 정도로 무시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전후 주요 일본 정치가들의 개성에 대해 처음 개안한 것 같다. 그간 한국의 언론에서 다뤘던 일본 정치뉴스에서 도대체 난 무슨 정보를 얻었는지...

 

이 책을 읽은 사람들 모두 느끼겠지만 저자가 지적한 일본의 굴레 중 상당부분은 한국의 굴레에도 해당한다. 물론 8장의 사진찍은 두 페이지처럼 일본보다는 한국의 상황이 낫긴 하지만 그다지 위로가 되진 않는다.

 

안정적인 종신고용을 누리는 소수의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와 비정규직과 자영업자에 대한 착취, 급속한 저출산과 고령화, 외국인이 기업의 의사결정자가 되기 불가능한 문화, 여성에 대한 차별, 일단 승인되면 사업 철회가 불가능한 공공문화, 정책을 입안하는 구심점의 불투명성, 정치인과 결탁한 비대한 검찰권, 플레이어가 되고자 하는 언론 등 일본과 미국 시스템을 7대3 정도로 섞은 한국에 도움이 될만한 경고들이 참 많다.

 

일본정치의 풍운아 오자와 이치로가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같은 역할을 할 기회를 얻었더라면, 그래서 일본이 개헌을 통해 미국이 씌워준 55년 체제의 금고아를 벗어던지고 미국의 진정한 동맹국으로 거듭났더라면 미국도 대중 정책에 대해 좀 더 여유를 가질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저자 태가트 머피가 중국공산당 정권에 대해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리 미국의 세계전략에 대해 비판적이더라도 지금의 중국 공산당이 벌이는 행태들을 보면 '핀란드화된 통일 한국이 되는 것이 남북한 대다수에게도 현재의 상황보다 더 바람직할 것이다.'(588쪽)라는 생각을 지금도 고수하는지 알고 싶다.

 

이 책이 출간된 2014년 기준으로는 아닐지 몰라도 2021년 시점으로는 베이징의 중공 정권에 전전긍긍하는 비굴한 통일 한국보다는 한미일 동맹의 하위파트너를 선택하는 한국인들이 훨씬 많을 것 같은데.

 

---------------------------------------------

 

97쪽

 

오늘날 보이는 사회적 통제의 수단들(매스미디어, 교통의 요지에 설치된 전시성 검문 시설, 사람들의 사상을 분주히 감시하는 사복 경찰 등)은 세계 어느 곳보다 먼저 도쿠가와 일본에서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263쪽

 

일본의 PTA는 학교 단위로 조직되었다. 가입은 사실상 강제나 마찬가지였고, 아이를 생각하는 엄마라면 활동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PTA에는 일본의 다른 모든 조직에 나타나는 특성이 다 드러나 있다. 겉으로 끝없이 강조하는 화합과 협력 뒤에 숨어 있는 고질적 파벌주의와 '수동적 공격 성향'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새로 해야 할 만큼 고도로 계산된 비방 전술 같은 것 말이다.

 

459쪽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오직 탁월한 정치인만이 정치인에 대한 분노와 혐오의 에너지를 동력 삼아 낡은 질서를 깨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힘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그리고 당시 일본에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던 가장 탁월한 정치인은 다나카 가쿠에이가 한때 '아들'이라 불렀던 사람, 오자와 이치로였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