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과 다른 분의 독후감이 마음에 들어서 찾아봤던 책인데 아마 저자가 80년대 중반생이고 SKY 출신의 잡지사 에디터라는 걸 알았더라면 볼 생각을 안했을 것 같다.
오늘의 집 앱에서 월세방을 꾸밀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사고, 가성비 맛집에서 어떻게든 그럴듯한 사진 한 장을 포착하고자 폰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지방 출신의 90~00년대 초반생 저자를 떠올렸던 터라.
저자의 여는 글이 비싸고 좋은 음식과 술, 호텔, 명품들을 누리고 살면서 가난을 운운하는데 삐딱해하는 나같은 사람들의 지적을 인정하면서도 완성한 원고를 노트북 속에만 넣어두고 동면을 시켰다가 결국 세상에 내놓은 이유가 반성이 아닌 개인주의와 취향에 근거로 드는 게 마음에 들어서 읽게 되었다.
나도 내 소득을 미래를 위해 저축하기보다는 경험을 통해 취향을 가꾸는 소비를 하는데 전혀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20대 초반부터 이렇게 자기 취향을 가꾸는데 집중한 사람들의 안목과 섬세함은 부러웠지만, 생활인으로 가정을 꾸리고 서울 안에서 버티기 위한 궁상맞은 모습도 책에서 같이 보여줬다면 더 괜찮았을 것 같은데 그런 내용이 별로 없어서 아쉬웠다. 다들 뭔가를 선택하고 무리해서 돈을 지출하면 그만큼 감당해야 하는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으니.
옷과 화장품 광고로 도배되어 있는 월간지의 편집자가 화장품이나 샴푸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아이러니나 <크리스마스의 당근 거래>같은 에피소드들이 좀 더 많았더라면 내 취향에 더 맞았을 것 같다. 인스타그램엔 보여주고 싶은 우아한 모습을 전시하고, 궁상맞게 쥐어짜는 가난은 최저가검색, 구글과 유튭을 찾는. ㅎㅎ
책에서 인용한 말과 글들이 참 좋은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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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가성비라는 단어가 무섭다. 절박한 사람의 마음을 이용하여 무언가를 팔아 치우려는 사람들이 넘쳐 나기 때문이다. 그 무언가는 대체로 후진 물건들과 하지 않는 편이 나은 경험들이다. 좁은 운신의 폭 안에서 최고의 선택을 하기 위해 육십여 시간을 보낸 후에 받아들이게 되는 결과가 남루하다면, 마음은 더욱 남루해진다.(가성비 좋은 숙소를 고르느라 육십여 시간을 보낸 후에 괴상하고 심란한 러브호텔에서 홀로 자게 된 내 이야기다.)
119쪽
멋은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에서도 나온다. 무뚝뚝한 말투에서도 묻어나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간결한 매너에서 나온다. 지나치게 가볍거나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게, 모든 상황을 세련되게 중화시킬 줄 아는 능력에서 나온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실컷 사 본 경험에서 나올 수도 있다. 무엇보다 세상과 관계로부터 분리되어 혼자 보내 본 시간들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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