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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봉희] 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2021)

독서일기/에세이(한국)

by 태즈매니언 2021. 11. 15.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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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유순웅 배우님의 1인 연극 <염쟁이 유씨>을 맨 앞자리에서 보러 갔다가 지명당하는 바람에 연극에 참여하면서 염과 습의 절차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장례지도사가 된 첼리스트를 주인공으로 한 일본 영화 <굿, 바이>(2008)나, 비슷한 소재의 웹툰 <아이고 아이고>를 보며 '우리는 모두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죠.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 추천으로 어차피 땅속에서 썩어없어질 나무 관을 1천만 원에 육박하는 최고급 제품으로 했다가 그 부질없는 선택에 대한 후회도 했습니다.
얼마 전 외할머니께서 작고하신 일이 마음에 잔물결을 만들었는지 타임라인에서 스쳐 본 이 책이 눈에 들어오네요. 처음에 책 띠지를 봤을 때는 의아했죠. 15년이나 활동한 배터랑 장례지도사가 700명의 고인을 보내주셨다면 어림 잡아 일주일에 한 분을 염습해주는 건데 그래서 생계가 유지가 되나 싶어서요.
그런데 사진으로 찍은 책날개 안쪽에 있는 저자 소개를 보고 놀랐습니다. 암투병을 이겨내고 일상으로 복귀해서 장례지도학과를 다니셨고, 무연고자 등에 대한 자원봉사만 해오셨다니.
사후세계, 유교의 장례절차에 대한 단 한 마디의 덕담도 없이 담담하게 이 시대 가장 소외된 이들의 시신을 닦고 옷을 잘 입혀 보내드리며 '산 사람의 놀음인 한국의 장례문화'에 대한 경험과 느낌들을 풀어 놓으시네요. 장례업계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비판하시는데 자원봉사로만 이 일을 해오신 분이기에 거침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경험하기 힘든 직업이다보니 여느 직업에세이처럼 독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에피소드들도 많았을텐데 워낙 간결하게 쓰셔서 읽으며 아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졸업 후 바로 일터로 나가셔야 했던 칠순을 바라 보는 분이 이렇게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전해주신 것도 참 다행이다 싶네요. 다만 말미에 나오는 29장은 앞뒤 전개를 봤을 때 빼는 게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이 책을 보고 나니 미리 제 자신의 장례절차를 상세히 정해두고, 제반비용에 대한 계약과 셈까지 다 끝내놓겠다는 각오가 생깁니다.
제 장례식을 조문객들이 ‘호스트가 내내 없었지만 최고로 재미있었다.’고 만족하며 귀가하는 파티처럼 준비해둔다면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선물로 괜찮겠다 싶네요. 앞으로 장례식장에 갈 일이 있으면 경쟁자들 벤치마크 잘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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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쪽
중요한 것은 장례를 지낼 때 남한테 보여주기 위한 어떤 관습보다도, 내가 나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을 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남한테 보여주기 위한 건 대개 누군가의 돈 벌이가 될 뿐이다.
135쪽
나는 연세가 많거나 병환이 있는 가족을 둔 분들에게 미리 '장례 쇼핑'을 다녀보라는 말을 한다. 이런 말이 조금 이상하게 들리는가? 장례 쇼핑이라는 말이 뭐 어때서 그런가? 쇼핑하러 다녀보면 쓸데없는 걸 뺄 수 있고, 줄여야 할 것을 줄일 수 있고, 업체의 농간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장례식장에 가서 견적서를 잘 봅아보라. 주위에 있는 적당한 장례식장을 찾아서 물어보고 품목을 정해두라. 그럼 어느 장례식장은 뭐가 얼마고, 어디서 쓸데없는 걸 부풀리고 등등을 꼼꼼하게 비교하며 알아챌 수 있다. 내가 고인을 잘 보내드리기 위하여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사전에 따져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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